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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nnjoy Jun 08. 2022

따뜻하고도 혼란스러운

새소년 <난춘> : 새소년과 상처 입은 이들의 봄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처음 이 노래를 들은 것은 작년 봄이었다. 유난히 화창하고, 맑고, 또 생기가 넘쳤던, 그런 4월이었다.

이 노래를 알려준 사람에게 물었었다. "제목이 난춘이면... 따뜻한 봄이라는 뜻인가?" "찾아보자."

난춘의 '난' 자는 '따뜻할 난'이 아니라 '어지러울 난'이었다.


그렇다, 봄은 마냥 따뜻하기만 한 계절은 아니다. 모든 자연이 화창하게 피어나고 사람들은 밝게 웃고 있는 계절 속에서 삶의 어두운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은 더욱 주눅이 든다. 봄은 늘 해사한 얼굴로 때에 맞춰 찾아오지만, 봄을 반기지 못하는 이들의 상처는 때에 맞춰 아물지 못하기 때문에.


오 그대여 부서지지마
바람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마

이리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새소년이 보내는 위로는 덤덤하다. '행복해져라' 말하지 않고 '오늘만이라도 함께 잘 버텨내자'고 말한다. 삶의 벼랑 끝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복해지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행복은 뜬구름과 같다.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손에 잡힐 수는 없는, 그래서 잡으려 노력하면 더 비참해지는 그런 게 행복일 것이다.


바람새는 창틀 하나에도 금세 외로워지고 마는 위태로운 이들에게 "내가 안아줄게, 그러니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같이 내일로 가자"는 말만큼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주는 말이 또 있을까. '살자'가 아닌 '살아내자'는 단어에는 삶에 대한 끈끈한 애착을 다시금 만들어내는 묘한 힘이 있다.


2022년 6월 8일의 Re-View,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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