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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nnjoy Jun 09. 2022

당신의 흰

한강 <흰> :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서,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대학교 막학기 수업에서 교수님께 본의 아니게 고해성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수업은 영국시를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매 수업이 끝나기 전 당일수업에서 느낀 점을 자유롭게 적어서 내는 시간이 있었다. 시에 대한 감상이든,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든, 과거에 대한 한탄이든 원하는 건 뭐든 적어서 낼 수 있었다. 교수님은 걷어간 글들을 다음 수업 시간이 되기 전까지 정독해오셨고 늘 정성스러운 코멘트를 적어 되돌려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속된 말로 '좆됐다'고 할 수 있는 내 현 상황에 대해 장황한 글을 적어서 내버렸다. 더불어 그에 대해 내가 느끼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까지 모두. 글을 마칠 때쯤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교수님께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채 도망치듯 글을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와버렸다. 다음 수업에 들어가기 5분 전까지 진지하게 결석을 고민하다가 빼도박도 못하는 막학기생인지라 어쩔 수 없이 수업에 들어갔고, 코멘트가 적힌 글을 돌려받았다. 코멘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더 나아가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라고 떨면서 스스로에게 답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어떤 대답도 유보한 채 그녀는 걷는다.살풍경함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절반쯤 얼어 있는 그 늪가를 벗어난다. (한강 <흰>)
: 대답을 유보한 채 걷다보면 어느덧 벗어나 있을 것!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책장에 묵혀 두고 잊어버렸던 이 책을 꺼내 읽었다. 사실 그동안 차마 이 책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꽤나 무던해진 지금이 돼서야 저 코멘트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는 살고 싶은지, 살고 싶지 않은지, 구태여 정의하려 하지 말자. 그저 걷듯이 하루를 살아내자.'


"그러려면 상처가 없는 발이어야겠지, 사진을 들여다보다 그녀는 생각했다. 곱게 아문 두 발이라야 거기 얹을 수 있다. 그 소금 산에. 아무리 희게 빛나도 그늘이 서늘한."

그녀에게 '흰'은 무섭고, 또 무거운 색인 듯 보였다. 가령 파괴된 도시를 덮어버리는 눈, 어둠 속에서 어른거리는 유령, 심연을 품은 촛불, 아픈 상처를 더 쓰리게 하는 소금과 같은 것.

그러나 한때 파괴되었다 굳건히 일어선 도시를 한없이 걷던 그녀에게, 흰 것은 이내 조용히 견디려 애썼던 하얀 웃음, 육체를 관통했다 뿜어 나오는 날숨이 된다.


방금 지은 밥을 담은 그릇에서 흰 김이 오르고 그 앞에 기도하듯 앉을 때, 그 순간 느낄 어떤 감정을 그녀는 부인하지 못한다. 그걸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서,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살아진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누군가 보기에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말.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이어지기 마련 아닐까?


2022년 6월 9일의 Re-View,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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