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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11. 2022

나의 첫 번째 유산일기

2021년 길었던 8월을 마무리하며 적었던 첫번째 유산일기

1. 2mm

처음 봤던 아기집은 2mm였다. 병원 정기검진 날이었고 이미 이틀 전부터 테스터기로 두 줄을 본 이후였다. 테스터기의 두 줄이 어느 위치에 생기는 지도 가늠이 안될 정도로 낯설었던 모습이었다. 테스터기를 세 개쯤 하고 병원에 갔지만 처음 본 아기집은 너무 작았다. 그래도 그 작은 곳에서 시작되는 삶이라니 우주 속에 블랙홀 같았다.


2. 7mm

일주일간 아랫배의 묵직하고 신비로운 통증을 안고 병원에 갔다. 그 사이 아기집도 커지고 여러 가지 임신 반응이 일어났다. 아기의 생일이 적힌 초음파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3. 5mm

1년 같은 2주가 지나고 5mm의 작은 아기를 발견했다. 아주 작은 심장이 아주 작게 뛰고 있어서 마지막 초음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순리대로 섭리대로 잘 흘러가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긴 밤을 보냈다. 지난 꿈에 복숭아 5개를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했고 그중 마지막은 납작 복숭아였던 게 뇌리에 박혔다.


4. 준비

지난 한 달간 4곳의 병원에서 7번의 진료를 봤다. 매번 다른 의사를 만났고 만날 때마다 내 증상에 대해 설명해야 했지만 어느 누구도 속시원히 원인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임신 초기는 누구에게나 불안정적이고 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사실은 진료를 볼 때마다 조금은 예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마지막으로 만난 유일했던 남자 원장님은 서둘러 돌아 나오는 내 뒤로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엄마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라고.” 빠르게 말을 덧붙여주셨다. 엄마의 잘못은 아니라니. 내가 엄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저 이런 일을 겪은 것뿐인데. 내 몸에서 그저 이런 일이 일어난 것뿐인데. 마음 깊이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들른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위로와 처방의 말이었던 것 같다.


5. 부부

남편과 부둥켜안고 울었다. 우리는 임신에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결정할 것과 고민할 것들. 내 몸의 변화에 대해 인지하는 일, 다니던 난임센터에서 전원 할 병원을 결정하는 일, 분만법을 고민하는 일, 산후조리를 결정하는 일, 아기의 공간을 만드는 일, 직장에 알리는 일과 같은 것.


한 달 동안 모든 일정을 가급적 취소하고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유산이 되었지만 그렇게 해야 했다.


한 달 동안 남편은 아침이면 나를 출근시키고 저녁이면 김이 나는 밥상을 차려주었다. 산책도 외출도 못하는 나를 돌보느라 매일 1분 대기조. 친구를 만나지도 본가에 가지도 못하고 그저 내 곁에만 있어야 했다.


결국 혼자 본가에 내려간 오전, 급하게 전화한 나를 실어다 병원에 갔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남편도 나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무섭고 낯선 경험이었다. 이틀 동안 온몸을 비트는 복통이 계속됐고 미역국과 죽을 번갈아가면서 먹으며 조리를 한다.


6. 9월

방학이 모두 지나갔다. 8월이 끝났다. 8월 마지막 날까지 휴가를 냈다. 9월부터는 아마 바빠질 거 같다. 어서 9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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