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변비, 저혈압, 코로나 확진에서 미주신경선 실신까지.
23주차 증상
악성 변비 vs 악성 설사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가장 평범한 임신 증상 중 하나인 배변 활동에 관한 이야기.
16주에서 20주 사이 철분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악성 변비와 악성 설사가 번갈아가며 오기 시작했다. 악성 변비가 찾아오면 오장육부가 모두 밀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 악성 설사가 찾아오면 식사 후 언제 배가 아플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대장의 통증인지 자궁의 통증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변비에 도움을 받았던 건 한국 요구르트 엠프로 4. 당이 높은 편이라 자주 안 먹으려고 했고 2~3일 정도 화장실 소식이 없으면 지레 겁먹고 바로 하나씩 먹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변비약을 처방받았고, 화장실에 못 가거나 오래 앉아서 힘을 주는 행위 자체가 아기에게 나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약을 복용하라는 처방이었다.
반대로 설사에 도움이 됐던 건 미지근한 물과 수면조끼. 양수 때문에 임신 전보다 배의 온도가 조금 낮은 편이었고, 점점 배가 나와 잠옷이 계속 배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설사 증상이 나타나면 의식적으로 한잔용 보리차 티백으로 미지근한 보리차를 하루종일 마셨더니 좋아졌다. 설사가 지속되면 자궁 수축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해서 오히려 더 걱정되어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바로 따뜻한 물로 속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사실 배변문제를 모두 해결한 건 철분제와 유산균 변경이 가장 컸다. 알약으로 된 철분제를 복용하면서 흑변, 녹변도 자주 나오고 악성 변비도 여러 번 겪어 액상 철분제인 '볼그레'로 변경했다. 철분 특유의 냄새와 30포에 3만 원이라는 가격이 허들이긴 했지만 병원에서 철분 부족으로 처방받고 나니 30포에 8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 웬만하면 처방받아서 드시기를 권장합니다. 유산균은 PH365가 가장 효과적이었고, 볼그레로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니 유산균은 어떤 걸 함께 먹어도 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23주에 진입하면서 처음으로 태동에 놀라 잠에서 깼다. 몸을 돌려 누웠을 뿐인데 옆구리부터 배꼽 양옆을 어찌나 발로 차는지 너무 놀라 똑바로 눕고 나서야 평화를 되찾은 뱃속 아기.
또 달라진 점은 배꼽의 모양인데, 이렇게 나오다간 어느샌가 배꼽이 튀어나와 정말로 버튼이 되어버릴 것 같아 겁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로션을 바르거나 샤워를 하면 물이 조금은 고이는 정도이긴 하지만. 배꼽이 바깥으로 뒤집어 까지면서 배꼽 근방 피부의 팽팽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심하진 않지만 그 근처에 달무리처럼 동그란 무늬가 짙어졌다가 옅어졌다. 피부가 튼다면 바로 이 곳부터겠구나 싶어서 열심히 튼살크림을 바르고 있다.
24주차 증상
24주 2일 아기 크기 767g
저혈압, 저혈당 증상으로 응급진료
확실히 배가 위로 올라왔다는 것이 느껴지는 한 주였다. 분명 배꼽보다 더 아래에 있었던 아기의 움직임이 어느샌가 배꼽과 옆구리 근방에서 느껴진다. 태동의 세기가 얇고 가늘었다가 묵직해지고 면적이 넓어졌다.
마침내 들어선 '안정기'. 미뤄뒀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첫날 극심한 복통으로 걷지도 앉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복통이 오기 시작하면 이제는 유산이 아닌 조산으로 분류되는 주수라 통증의 근원을 조금 더 면밀히 확인해야 했는데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배가 다 아팠다. 식은땀이 나고 눈앞마저 캄캄해져 지하철에서 까무룩 잠들거나 혼절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집까지 지하철로 30분 거리. 겨우 기어서 환승해 집 앞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놀란 남편과 바로 병원으로 직행했고 다행히 조산기나 자궁수축 없이 경부길이도 4cm로 매우 안정적이라고 했다. 다만 저혈압과 저혈당이 겹치면서 극심한 복통이 온 것 같다고. 결론은 아기는 괜찮고 엄마는 안 괜찮은 상태.
내가 누린 일상은 그저 매년 가을 그랬던 것처럼 노란 은행잎이 가득 깔린 삼청동을 산책하고,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한 게 다인데 돌아오는 게 이렇게 무섭도록 아찔한 고통의 경험이라니. 병원에서 나오면서 다시는 남편 없이 자차 없이 외박하거나 외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럼 동일 증상을 마주할 일도, 어디서든 누울 채비를 할 일도, 이런 복통을 느낄 일도 없겠지.
응급진료를 보고 식은땀이 식고 나니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몰려왔다. 흔히 말하는 '임신의 안정기'는 임신을 안 해본 사람들이 만든 유머 섞인 말인가 싶었다. 판콜에이 한 병, 타이레놀 한 알, 오쏘몰 한 병과 반신욕 30분이면 나을 것 같은 컨디션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타이레놀 한 알을 넘기는 것뿐이라 컨디션 난조가 지속돼서 조금 우울했다. 참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25주차 증상
내가 코로나 확진 산모라니
열이 순식간에 38.8도를 찍었다. 목과 코에 모든 수분이 날아가고 건조감이 상승하고 결국 잠 한숨 자지 못해 집에 구비해 둔 자가키트로 아무리 찔러봐도 음성. 임신으로 기초체온이 올라간 상황이라 미열이 조금 있다고 생각하고 집 근처 이비인후과에 수액 맞으러 갔다가 덜컥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임산부에게 약을 처방해 줄 수 없다며 타이레놀로 버티라는 처방을 받고 나왔다.
타이레놀로 도저히 나아지지 않아 보건소에 유선 연락 후, 심평원 호흡기환자진료센터 (https://ncov.kdca.go.kr/static/pclinic5.html) 검색해서 권역 내 원스톱(코로나 진료 및 산부인과 진료) 가능한 병원에 연락해 초음파를 보고 왔다.
초음파로 아기 움직임을 확인하고, 원래 다니던 분만병원인 미래와 희망에 전화하니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바로 정희정 원장님이 콜백 해주셔서 임산부 투약 가능한 약들로 처방전을 써주셨고, 미래와 희망 원무과에서 집 근처 약국으로 바로 처방전을 팩스 발송해 주셨다. 산부인과와 약국에서 확인한 약 성분들이지만 1%의 불안감도 가지고 가고 싶지 않아 '마더세이프'에 전화로 처방약을 문의한 후 약을 복용했다.
약을 먹고 2일 정도 지나니 코로나 증상이 대부분 호전됐다. 열이 날 것 같으면 바로 아이스팩을 겨드랑이와 등에 대고 양수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열이 떨어지고 나니 잠을 잘 수 있었고, 자궁 뭉침이나 수축도 큰 폭으로 줄어들어 조금 나아졌다. 아기에게 큰 영향이 없는 코로나 후유증인 호흡 곤란, 가래오 기침이 지속되긴 했지만 번외로 두고.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며 삼시세끼 밥과 약을 챙겨주었고, 어느 때보다 물도 많이 마셨더니 격리 이전보다 배가 1.5배는 더 나온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 확진 산모 병원 진료 절차
1. 심평원 원스톱 대면진료 가능병원 미리 확인('산부인과' 검색, '확진자 진료'에서 '대면')
2. (비대면)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 유선 비대면 진료 진행
3. (비대면) 약처방받아 약국에서 처방전 팩스 수신 가능
4. 마더세이프에서 약 성분 재확인 가능
5. (대면) 원스톱 대면진료 가능병원 진료 가능여부 문의
6. (대면) 병원에서 지정해 준 시간대에 내원
7. (대면) 산부인과 초음파 확인 가능 및 수액 처방 가능
26주차 증상
26주 2일 아기 크기 922g
임신 중후기 입덧은 아니겠지
25주 후반부터 저녁에 속이 비면 울렁거리는 증상이 시작됐다. 약간 입덧 같기도 소화불량 같기도, 역류성 식도염 같기도 해서 찾아보니 후기 입덧이라는 게 있다고. 오 마이갓 지쟈스 할렐루야. 25주에서 27주 사이에 자궁이 크면서 위장을 눌러 울렁거림이 다시 시작된 사례들이 적지 않게 검색됐다.
입덧은 16주로 졸업한 줄 알고 딱 3알 남겨두고 나머지 친구에게 싹 다 줘버렸는데 이제 와서 입덧이라니. 몸도 무거운데. 그 길로 음식 나오는 티비 프로그램 다 끄고 입덧에 직방인 얼음과 방울토마토를 먹으면서 버티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남편에게 토스트를 주문했다. 그 길로 배가 꺼지기 전에 목 끝까지 음식이 차있을 때 잠에 들어버렸다.
속이 좀 채워지니 태동이 시작됐다. 몸을 돌아 누우면 아기가 마치 옆구리에서 트램폴린을 타는 것처럼 온몸이 울릴 정도로 발로 찼다. 똑바로 누우면 온 배를 유영하듯 돌아다니면서 존재감을 뽐낸다. 손을 올리면 거기를 조금 더 쿵쿵, 손가락으로 누르면 조금 더 세게 쿵쿵. 아기가 나의 움직임에 반응을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움직임의 강도가 달라지는 걸로 봐서는 왠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기가 작을 땐 태동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아기가 이제 700그람 이상이 되니 태동이 없을 땐 고요하고, 태동이 있을 땐 우람한 기운이 느껴진다. 대단해.
26주 임당 및 빈혈검사. 임신하고 야식도 많이 먹고 심지어 컵라면을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먹었다. 원래 과일도 쌓아두고 먹는 스타일이라 꾸준히 잘 먹었고, 끼니도 1.5인분씩 꼬박꼬박 잘 먹었다. 거기에 출근해서는 쏟아지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초코과자를 엄청 먹기도 했다. 빵도 콜라도 먹고 싶은 만큼 다 먹고 나니 임당이 얼마나 공포스럽던지. 물론 산책도 꾸준히 했고 야채도 많이 먹고 물도 많이 먹는 편이라 방어가 되어주리라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임당날엔 조금 떨렸다.
임당 140 기준에 124로 통과. 빈혈은 11 기준에 10.7로 미달. 철분을 아침저녁 추가 보충하라고 했다.
임당검사가 끝나고 입체초음파를 봤다. 1차는 손을 얼굴에 올리고 있어서 실패, 2차는 탯줄이 얼굴 앞을 가려 실패, 마지막 도전이었던 3차는 손이며 발이며 탯줄이며 다 얼굴 앞을 가려서 대실패였다. 중간중간 물도 마시고 조금씩 걸어봤지만 도통 보여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입체초음파를 취소하고 집으로 왔다.
27주차 증상
컨디션 난조의 끝판왕. 미주신경성 실신 오셨습니다.
코로나로 필라테스 개인레슨을 계속 빠지다 보니 스트레칭이 절실해 3주 만에 필라테스에 갔다. 임신하고 처음으로 견갑골 사이를 쭉 펴내보기도 하고 좀 웃음이 나는 자세이긴 하지만 벽에 손바닥을 대고 소소한 윗몸일으키기도 했다. 운동복 아래 나시티를 받쳐 입지 않아 배가 조금 차가워지긴 했지만 딱히 뭉치거나 떙기지도 않아 기분이 좋았다.
절반정도의 스트레칭을 마치고 비스듬하게 누워 선생님이 폼롤러로 해주시는 마사지를 즐기고 있던 찰나 갑자기 몸이 차가워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성인이 되고 많으면 1년에 2번, 평균적으로 1년에 1번 정도 찾아오는 미주신경성 실신의 전조증상.
손발이 차가워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스크를 내리고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그 사이 선생님은 소등하고 나가주셔서 기구에 뻗어 1분처럼 정신없이 지나간 10분을 꼬박 숨을 골랐다. 그저 뻣뻣하게 굳어버린 종아리 뒤쪽과 어깨, 그리고 승모를 조금 눌러주신 것뿐인데 갑자기 혈액순환이 멈춰버려 놀랐다.
운동을 마치고 겨우겨우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따뜻한 무언가가 왈칵하고 2-3차례 나왔다. ‘아 역시 임신 쉽지 않구나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싶어 분만병원에 바로 전화를 했다. 퇴근하던 남편에게도 병원에 갈 수 있는 중간지점으로 와달라고 연락하자마자 머릿속엔 온통 ‘아기무게가 1킬로가 넘으면 생존확률이 95%, 이틀 전 아기가 950그람이었으니까 이제 1킬로가 됐겠지. 그럼 미래와 희망으로 우선 가야겠다.’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무슨 정신인지 방금 전 짧은 실신으로 여전히 차가운 몸을 이끌고 초행길을 따라 운전을 했다. 응급진료는 분만실에서 한다기에 부리나케 올라갔다. 태동검사, 심박수체크, 수축검사와 양수검사까지 하고 분만장에 들어가 분비물과 초음파를 확인했다. 모든 검사 결과는 정상이고 아마 엄마가 무리를 했거나 컨디션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며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면 괜찮다고 하셨다. 싱거운 것 같지만 사실 듣기 전까진 엄청난 공포심으로 기다려야 하는 말. 내가 얼마나 귀하게 가진 아기인데 매일 잊고 산다. 무리를 하고 체력적으로 바닥을 치고 나서야 겨우 기억한다 그 사실을.
지난 몇 주간 얼마나 무리가 됐냐고 하면 명확하게 정량적으로 얘기하기 어렵지만 25주였던 코로나 격리기간이 임신 후 처음 가져본 가장 길고 편했던 휴식이자 아기만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기였던 건 분명했다. 그 이후에 2주는 갑자기 조직개편으로 일이 2배로 늘어나고 행사에 행사가 겹치고, 코로나 격리에 들어가기 직전엔 지하철에서 저혈압과 과호흡이 겹쳐 식은땀이 범벅됐으니 사실 몇 번의 경고를 받은 셈이었다.
임신 중기 컨디션 좋다는 말 다 거짓말이다. 누구는 해외로 태교여행도 간다는데 집에서 30분 거리의 서울 모처에서 친구만 만나도 저혈압에, 굳어버린 몸 곳곳을 마사지만 받아도 쓰러지는 내 임신중기는 도대체 어떤 컨디션으로 보내는 걸까.
다음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누워있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5시간이 넘게 재택근무를 했다. 재택을 하다가 서러워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어제 내가 쓰러졌노라고 힘이 들었지만 아기는 괜찮더라고 했더니 “너는?”이라고 되물었다. “아기 말고 너는 어떤데? 너는 안 아프니? 괜찮니?”라고. 엉엉 울었다. 그러게 나는 아프지. 나는 안 괜찮지. 나조차도 내가 어떤지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아기가 괜찮은지 들여다보느라 급급했는데 뭔가 세게 띵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남편도 나도 임신이 처음이라 내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이게 어떤 증상으로 발현이 되는 건지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그 무엇보다 가장 우선되다 보니 막상 산부인과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나면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내 몸은 뒷전이 돼버린다. 어쨌거나 괜찮다니까 아기는. 이러나저러나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손발도 차고 다행히 태동은 좋고 해서 잘 먹고 잘 쉬면 될 것 같다. 그동안 힘들어서 그렇지 뭐. 이제 괜찮을 거야. 잘 버텨보자 나도 아가도!
코로나 격리기간을 지내면서, 그러니까 24주에서 27주가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예쁨과 귀여움에 점철된 아기옷을 구입해 보았다. 어느새 배는 볼록 튀어나왔지만 어쩐지 아직 아기를 만나려면 한참은 더 남은 것 같아 사지 않고 있었는데 막상 물건들을 보니 너무 앙증맞아서 환호를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아 이 작고 귀한 것들을 입은 아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