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크기 453g. 임신 중기 그리고 정밀초음파.
19주차 증상
밑 빠지는 느낌이 이런 건가?
19주에 들어서자마자 이른바 '밑빠짐' 증상이 시작됐다. 배가 단단해지고 묵직하면서 Y존으로 피가 쏠리는 기분. 임신 초기 허리가 묵직한 기분에 요가의 태양경배자세인 수리야나마스카라 두 세트를 하고 나서 온몸이 시원해졌던 기억이 있어 조금 겁나는 마음을 안고 3개월 만에 요가를 했다.
스트레칭 20분에 이완 10분이 전부인 프로그램이었지만 테이블 자세, 소고양이 자세, 다운독까지 하면서 '이걸 임산부가 해도 되는 거야? 해도 되는 거였어?'라는 놀라운 마음으로 열심히 따라 했는데 와 너무 짜릿하고 시원했다. 마지막 아기자세를 하다가 배가 뭉치고 한쪽으로 쏠리는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라 갑자기 겁이 나 바로 누워야만 했지만. 혈액순환이 쭉쭉 되고 골반통증도 배뭉침도 Y존의 밑 빠지는 느낌도 많이 사라졌다.
19주 3일. 자궁 오른쪽에 있는 근종이 커지면서 통증이 있는 부위 근처로 동그랗게 근종이 만져진다. 찾아보니 12~15cm까지도 커지는 사람이 있다는데 이 경우 타이레놀로 통증이 잡히지 않아 결국 입원해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받는다고.
임신 정말 쉽지 않다. 조금 수월해 보이는 임산부들을 발견할 때면, 도대체 어떤 마음이면 해외로 태교여행을 가고, 7주차부터 이른바 임밍아웃에, 16주차 젠더리빌까지 대대적으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할까 싶다가도 이왕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에 대해 깔끔하게 내려놓고 세련되게 임신 기간을 그저 즐겨보고 싶기도 하다.
20주차 증상
40주의 딱 절반에 왔다.
어쩔 수 없이 임부복을 사기 시작했다.
20주차에 들어서자마자 철분제 부작용인지 소화불량과 위장장애, 그리고 멀미가 시작됐다. 입덧이 끝나고 이제야 좀 살만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물리적인 컨디션은 올라가고 배는 나오고 속은 안 좋다. 팬티라인 언저리에서 느껴지던 태동은 어느새 배꼽 근방까지 올라왔다. 앉아있을 때도 툭툭, 누워있으면 꽤 큰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남편과 내가 손을 번갈아 올려두고 아가의 태동을 느낀다.
남편에게 태담을 좀 해보라 하니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건 하지 않겠다며 시크하게 구는 게 영 부끄러워 그런 것 같다. 아가가 움직일 때마다 “거기 있구나, 오늘은 오래 앉아있어서 힘들었지?”라고 간단한 말을 건네고 나면 대답이라는 듯 몇 번 더 꿀렁이면서 움직이는데. 이 즐거운 교감을 마다하다니.
왠지 자존심 상해 사지 않았던 임부용 속옷과 임부복을 구입했다. 임신 준비를 하면서 원래보다 3kg 정도 쪄 있어서 안 그래도 조금 넉넉한 사이즈의 속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불편하기 시작했다. 배와 등에 주름이 생겨 속옷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많이 먹은 날은 위아래가 너무 답답했다.
임신 후 원피스만 입고 지낸 지 벌써 5달째. 슬 추워지기도 하고 이제는 좀 바지가 입고 싶어서 임부용 바지를 하나 샀다.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까운 소비였다. 임부복 사이트를 세네 군데를 뒤지다 개중 가장 저렴한 바지로 샀다. 배에 복대처럼 덧대여진 그 모양새가 어쩐지 자존심 상하고 어차피 내년 이맘때면 결국 안 입을 옷에 단 돈 이삼만 원도 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원래 입던 옷을 고집해서 입는 건 사실 굉장히 큰 불편함을 감수하는 생활과 이어진다. 예를 들어 원래 입던 나시티를 입고 출근하면 앉자마자 배 위로 나시가 말려 올라간다던지, 고무줄 잠옷을 입고 잠에 들어도 위아래로 벌어져 배와 등이 시려워 잠에서 깬다. 무려 배탈이 생기기도.
철없는 마음에 남편 청바지 겨우 단추를 잠그고 나갔다가 고무줄 반바지를 사서 바로 갈아입기도 하고 멋모르고 약간 짧은 티셔츠를 입고 갔다가 어느새 배꼽 위로 잔뜩 말려 올라가기도 했다.
임부복이 필요하다. 20주 이전엔 꾸역꾸역 버티더라도 20주 이후엔 절대적으로. 그럼에도 여전히 결제까지는 결코 이어지지 않는 나의 심보. 임부복 바지 2개와 임부용 스타킹 3개를 샀다. 임부용 의복은 정말 너무 사고 싶지 않아 미뤄뒀는데 도저히 옷이 들어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구입.
*임부복 쇼핑몰은 다양하게 있다. 유명한 곳은 소임, 맘누리 등. 임부복 쇼핑몰에서는 주로 바지와 임부용 스타킹을 구입했고, 원피스류는 네이버를 열심히 뒤져 오버사이즈로 구입했다.
21주차 증상
정밀초음파로 선천적 기형을 검사했다. 무사통과!
거의 한 달 만에 지하철을 탔다. 두 개 칸을 옮겨 다니면서 임산부 좌석을 살폈지만 단 한 자리도 비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 허리를 부여잡고 임산부 배지까지 가방에 달았는데 모두 보고도 못 본 척. 심지어 임산부 좌석에 청소년 딸을 앉히고는 나에게 등 돌린 아줌마도 있었다. 정말 인류애 바사삭.
지하철 열심히 타고 병원에 가서 정밀초음파를 했다. 임신 40주의 딱 절반인 20주가 넘어가면서 정밀초음파로 아기의 인중, 귀, 심장(심실과 심방), 심장혈류, 쓸개, 척추, 꼬리뼈, 손발가락, 각종 뼈의 위치, 뇌실의 크기 등등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정밀초음파실에서 10분 정도 정밀초음파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졸음이 몰려왔는데 문제는 아기도 졸렸나 보다. 그저 정밀 초음파 시작부터 하품을 시원하게 하며 잠들어버린 아가 덕에 손가락은 보지도 못하고 임신 후 처음으로 아가 주먹을 구경하긴 했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면 됐다.
12주와 16주차에 한 기형아 검사의 팔로우 업 정도로 혹시 발견하지 못한 선천적 기형이 20주 정밀초음파에서 발견된다고 하기에 (예를 들면 뇌의 이상, 혈류의 이상, 심장의 이상, 척추의 이상 등)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사통과.
22주차 증상
태동이 조금 더 활발해졌다
아기가 집을 넓히는 주간인지 배꼽 사방면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태동을 한다. 남편 손에 쿵, 남동생 손에 쿵. 몸을 움직이면 아기가 쏠리고 근종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 아기의 태동만큼 만져진다.
집에서 쉬는 동안 아기의 태동이 활발해진다. 반대로 야근이 많은 주중엔 아기의 태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태동 말고는 아기의 상태를 확인할 길이 없어 매일 배에 손을 얹고 가만히 움직임을 관찰한다. 이전엔 태동도 없었으니 그저 하염없이 병원 검진일을 2~3주 기다렸던 것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여전히 걱정은 줄지 않는다.
난임병원 원장님의 제안에 따라 대학병원 초진을 잡았다.
추천해 주신 세브란스나 서울대병원 모두 멀어서 서울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으로 예약. 김선민 교수님 진료를 봤는데 이전 유산 이력과 습관성 유산 검사 결과 등을 꼼꼼히 들어주셨다. 초음파도 꽤 오래 봐주시고, 진료대기도 생각보다 길지 않아 전원이 고민될 정도. 그럼에도 대학병원급 2차 종합병원이다 보니 너무 정신없고, 주차대기, 접수대기, 수납대기, 예진실, 초음파실, 진료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진이 다 빠졌다. 산모도 태아도 모두 건강하다고 그저 전원을 한다면 과거 이력이 만든 비자발적 ‘고위험 산모’라는 타이틀뿐이라고 해서 원래 다니던 분만병원에 남기로 했다. 병원 선택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다가도 임신기간 내내 나와 아이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라면 꼼꼼히 따지고 고르는 게 맞다.
*서울 서남권에서 주로 고려되는 2차 병원은 고대구로병원과 보라매병원이다. 나 같은 경우는 보라매병원이 직장과 집 딱 한 중간에 있어서 선택하기 쉬웠고, 서울대 전문의가 운영하는 난임병원에서 추천받은 병원이라 보라매병원 초진을 선택했다.
*보라매병원으로 전원 하려고 한 또 하나의 큰 이유는 분만병원인 미래와 희망에 NICU(신생아집중치료실)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미래와 희망에서는 근거리 강남성모, 강남세브란스 등으로 빠르게 전원 해준다고 하기에 이 부분은 조금 내려놓고 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