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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08. 2023

임신 28주차에서 32주차

피로도 급상승, 응급진료, 손발 부종, 그리고 무던해지는 성격까지.

28주차 증상
다시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임신 초기급의 피로감

아침저녁으로 피로감이 쌓이고 낮잠과 이른 저녁 쪽잠으로 겨우 해소하고 있다. 거의 8주차의 몸상태와 유사하게 변하는 중. 게다가 배는 나오고 허리랑 엉치는 하루종일 아프다. 손발 붓기도 최고조를 향해간다. 결혼반지를 뺐고, 가장 좋아하는 얄쌍한 검정 단화 신기도 포기했다.


지난 7개월을 똑바로 잘 누워서 잤고 오히려 태동도 더 잘 느껴지곤 했는데 이제는 똑바로 못 눕게 되었다. 횡격막에서부터 목 끝까지 숨이 턱턱 막힌다. 친정에서 바디필로우를 가져와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있다. 임당을 통과하고 나니 무서울 게 없어져 하루에 4끼를 조금씩 나누어 먹는다. 남편이 기가 막히다며 이렇게 먹으니 아기가 잘 클 수밖에 없다고 한다.


20주부터 27주까지는 깊게 잠을 자지 못해 새벽 3~4시면 일어나 한두 시간씩 시간을 보내다가 자기도 하고, 태동이 너무 심하게 느껴지거나 화장실이 급한 느낌에 부랴부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마법처럼 28주가 되자마자 피로도가 급상승하면서 동시에 수면의 질이 올라갔다. 자면서 느껴지는 태동쯤이야 그저 '건강하구나.'라고 생각하거나 '너도 자거라.'의 제스처로 배를 통통 두들기고 나면 그저 아무렇지 않아 졌다. 아마 이미 태동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중 분만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자연분만 의지가 거의 0에 수렴할 정도로 없어서 자연분만할 때 피해야 하는 '크고 건강한 아기'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머리통도 크고 배도 볼록하고 다리도 길쭉한 무럭무럭 자라난 아기를 키워내도 분만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선택제왕을 하고 싶다.


함께 임신기간의 대부분을 보낸 친한 지인이 아기를 낳았다. 분명 배 안에 있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 사람 형상의 아기가 뱃속에서 나왔다는 그 현실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뭔가 조금 살 떨리고 신기하고 울컥했다. 그니까 지금 내 배안에 있는 게 세포 분열 직후의 태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지?


29주차 증상
29주차 1일 아기 크기 1447g
태동이 무섭게 몰아친다. 그리고 배뭉침으로 응급진료.

팔인지 다리인지 모르겠는 어떤 얇은 나뭇가지들이 쉼 없이 아랫배를 유영하는 기분이다. 매번 초음파를 볼 때마다 자궁벽에 딱 붙어 앉아있었던 '역아'이기 때문에 발이나 다리로 방광과 Y존을 차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늘 스스로에게 주지 시킨다. 이게 문제 상황이 아니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틀 정도 연속해서 태동이 몰아치면 또 그다음 이틀은 잠잠하다. 아마도 자세를 조금 더 뒤쪽으로 옮겨갔나 싶을 정도로 뱃속의 어느 장기인가가 둥둥거리면서 북처럼 울린다. 딸꾹질은 꾸준히 같은 시간대에 배꼽아래서 느껴진다. 동~동~동~동~ 하면서. 그럼 아 자다가 일어났나 보다 하면서 노래도 틀고 노래도 부르고 말도 걸어본다.


정기검진 후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주말 내내 하루종일 배뭉침이 지속됐다. 1시간에 5~6번 배뭉침이 지속되면 병원에 내원하라고 안내받았는데 아침부터 단단하게 솟은 배는 점심 먹은 후부터는 못 걸을 정도로 뭉쳐버렸다. 이놈의 일, 이놈의 행사가 나를 또 한 번 응급진료로 몰아넣었다. 행사 때문인지 주수 때문인지 자연스러운 증상인지 모르겠지만 밤새 뻐근하다 결국 행사 내내 아프니 정말 탓할 곳이 없었다. 이런 날 일이고 뭐고 다 모른척하고 그냥 연차 내고 쉬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행사를 마치고 화장실 거울에 몸을 비춰보니 거의 아랫배에서 고무줄로 당겨 위로 부풀린 풍선 모양의 배가 보였다. '이건 좀 문제다.'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또 산만큼 부풀어 오르는 걸 보고 결국 병원으로. 회사에서 미래와 희망까지 지하철로 15분, 차로는 30분 정도. 그나마 집에서 가는 것보다 가까워 다행이지만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퇴근 시간 강남을 향해 가는 택시는 곡예운전이 필수인지 가는 길조차 쉽지 않았다.


오른쪽 골반뼈 아래 있는 근종이 배꼽까지 올라올 정도로 배가 뭉쳐 있었지만 아기는 다행히 역시나 건강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3일 동안 30g 정도 자란 아기를 확인했다. 근종이 좀 커진 건지 아니면 염증증상인지 잘 몰라 채혈하고, 수액도 한 팩 맞고, 마약성 진통제도 한 팩 맞았다. 응급진료 3차례 만에 처음으로 정희정 원장님의 당직일에 딱 걸린 바람에 원장님도 뵙고 궁금한 것도 많이 여쭤볼 수 있었다.


20분에 한 번씩 수축이 잡히긴 하지만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서 우선 귀가. 8~10분에 한번 수축이 잡히거나 경부가 짧아지면 조산의 위험이 있어 무조건 입원이라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다행히 경부길이 4.4cm.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유리문이 열리자 원장님이 나오고 "보호자분, 설명드릴게요." 라며 남편에게 내 상태를 설명해 주셨다고 했다. 남편은 꼼꼼히 그 설명을 듣고, 폭우를 뚫고 내 회사에 가 차를 다시 찾아왔다.


진통제를 맞고 나니 어쩐지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편안해져 살 것 같았다. 긴장도 풀리는 것 같고. 언제든 또 아프면 병원에 와 진통제도 맞고 검사도 하고 가라고 하셨다. 따뜻한 카리스마 정희정 원장님 사랑해요.

29주차 초음파 사진 / 첫 수축검사


30주차 증상
숨이 차기 시작했고 대망의 엘리베이터 공사 시작.

30주에 들어가며 가장 힘든 점은 잠을 잘 때도, 걸을 때도, 앉을 때도 늘 숨이 찬다는 점이다. 속옷 입으면서 숨이 차고, 잠옷 입으면서도 또 숨이 차고. 게다가 온몸이 간질간질하기 시작했다. 임신 초기부터 선물 받은 각양각색의 튼살크림을 부지런히 소진하고 있다. 프리메라 대용량, 프라이 오일과 크림, 비오템까지. 총 5세트를 선물 받았으니 남은 2세트는 임신 후기와 출산 이후에 사용하면 될 것 같다. 크림 바를 때도 숨이 차서 죽겠다.


엘리베이터 공사가 시작되고 아침저녁으로 아파트 7층 높이에 있는 5층 사무실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운동량이 워낙 없어 이마저 운동이다 여기며 다니고 있긴 하지만 참 임신 기간 내내 이렇게 가혹할 수가 없다. 행사 끝엔 무조건 응급진료가 붙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몸이 쑤셔 병든 닭처럼 소파에 겨우 몸을 걸치고 잠드는 나에게 엘리베이터 공사라니. 이 놈의 회사 사실 나랑 정말 악연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루이틀 정도 엘리베이터 공사 중인 사무실이 아닌 낮은 건물에서 업무 지원을 했더니 오히려 운동량이 확 줄어들어서 그런지 숨차는 현상도 더 심해지고 배도 더 커진 기분이고 골반 통증도 심하다. 차라리 더 움직여야 덜 아픈 건가 싶고, 나도 모르겠다 내 몸을.


31주차 증상
손바닥이 탱탱볼처럼 부었지만 나는 때가 밀고 싶다!

손바닥이 붓기 시작한 지 1~2주 정도가 되고 이젠 아침엔 눈에 띄게 주먹이 안 쥐어지기 시작했다. 저녁엔 손바닥에 탱탱볼이 들어찬 것처럼 당겨진다. 발이 저린 듯 종아리도 당겨지고 본격적인 부종이 시작된 것 같다. 몸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세신샵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주위 언니들이 세신하고 그다음 날 응급 출산을 했다는 말에 너무 무서워 10분 만에 겨우 족욕을 마치고 때수건으로 빠르게 샤워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1시간 침대행. 숨도 차고 배도 땡땡해서 눕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휴직하면 하고 싶은 것: 요가, 아기방 꾸미기, 아기 물건 구입, 그리고 1인 세신샵에서 세신 받기.


이제 1.5kg 아니 아마도 2kg에 가까워졌을 우리 아기.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화제의 군인 가족 오둥이네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1.05kg로 태어난 아기도 너무도 사람 같아서 임신이 다시 한번 또 실감이 됐다. 내 뱃속에 있는 게 더 이상 세포나 배아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엔 마음으로 이제는 확실히 머리로도 인지.


32주차 증상
32주차 2일 아기 크기 1903g
온몸에서 임신이 느껴지는 뚱보 임산부가 되어버렸다

32주가 넘어가면서 운전을 오래 하거나,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아랫배가 시큰거리고 뭉치기 시작한다. 오래 앉아있는 것 자체에서 오는 부담감이 생겼다. 한 자세로 오래 있는 경우 배가 금방 솟고 골반과 밑 빠짐의 고통이 시작된다. 손은 주먹을 쥘 수 없을 만큼 부었다.


임신중독증의 주요 증상은 손발 붓기와 고혈압, 단백뇨(소변에 거품이 섞여 나오는)라는데 병원 검진 3주를 기다리느라 집에서 자가진단할 방법은 손발 붓기를 매일 확인해 보는 것밖에 없어 답답했다. 28주차부터 무서울 정도로 손가락 발가락이 붓고 한 순간에 주먹이 아예 쥐어지지 않아 스스로 '임신중독증'인 것으로 판가름 내린 참이었다.


다행히 역시나 아니었고, 그저 또 하나의 정상적인 임신증상이며 손바닥이 아리나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아마 아프기 시작할 거라는 원장님 말해 겁이 났다. 31주에서 33주가 되면서 아기가 1kg대에서 2kg를 진입하면서 내 몸과 배가 무럭무럭 자란다. 눈에 띌 정도로 훅훅 나오는데 잠옷이고 속옷이고 모두 배 근처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전 직장에 다니면서 자다가 일어나도 외울 수 있는 몇 가지 규정 중에 '임산부 규정'이 있었다. 32주 이후부터 의사 소견서 지참, 36주 이상 산모 탑승 불가. 32주차 임산부가 되어보니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 진짜 애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32주에 비행기 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시뮬레이션만 돌려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연장선상에서 36주차에 접어드는 설날 연휴 마지막 여행이었던 양양 여행을 취소했다. 스스로에게 주는 태교여행쯤으로 생각하고 신나 있었는데, 남편이 적어도 서울에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취소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병원에 달려갈 수 있어야 하는 주수.


32주 후반에 가장 도드라진 변화는 모든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손바닥,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큰 틀에서는 정신적인 예민함도 함께 둔해졌다. (진짜다.) 아기의 움직임도 아주 조금 둔해졌는데 그건 태동의 형태가 잔잔함에서 규모감으로 바뀌는 시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손바닥을 꽉 쥘 수 없고, 어깨-등-허리-골반-엉덩이가 모두 무게를 받아 앉으나 서나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기가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서 숨 쉬는 건 편해진 상태, 그 대신 Y존으로 자궁과 아기를 받치고 있느라 어딘지 끼어 있는 기분이 계속 든다.


다행히 회사의 단축근무가 시작되면서 왕복 2시간 남짓 운전하던 출퇴근길을 아침엔 남편이 해주고 저녁에만 하면 되는 데다 30분 이른 퇴근 덕에 차도 안 막혀 60~70분의 퇴근길이 40~50분으로 줄어들어 좀 할만하다. 아니었으면 정말 곤욕스러울 뻔했다. 운전만으로도 배가 뭉치는 주수가 돼버렸다.


정신적 예민함이 둔해지면서 편한 것은 기억력이 조금 감퇴하고 (진짜 진짜다.)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것 한 두 가지에만 초점을 맞춰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었다. 인수인계서만 하루종일 쓰기도 하고, 일하다가 놓치는 것들에 약간 관대해지고, 좋고 싫음이 옅어지고 오로지 나와 내 피로도에만 집중하는 둥글둥글하고 걱정 없는 삶. 근육과 인대를 느슨하게 하는 릴렉신이 분비된다는데 알고 보니 마음의 근육도 포함인 건가 싶을 정도로 일하다가 작은 것을 놓쳐도 '오 놓쳤군. 다시 해야지.' 싶다. 이전에는 뭐랄까 체크리스트 쓰다가 밤샜는데, 물론 날을 받아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전의 나는 얼마나 날이 서 있었던 걸까 싶기도.


아 그리고 잇몸이 약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스케일링 받으면 피바다가 될 것 같을 정도. 피부는 탱탱한데 건조하고 몸은 기초체온이 올라가 더운 편인데 감기 기운이 계속된다. 33주부터 38주까지 이제 5주 남았다. 5주 후면 나는 홀몸, 아기는 탄생한다.

앙증맞고 귀여운 선물도 받았다
그리고 저절로 손으로 받치게 되는 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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