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태국 치앙마이 두 번째 이야기.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는 수영장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었다. 저 멀리 깊은 산속 구름이 지나가는 것이 훤히 보였다. 예스러운 음악이 나오고 식탁 나무 사이 개미가 지나가는 곳에서 첫 번째 아침을 맞이했다. 치앙마이는 태국의 북부에 속해 덜 덥고 덜 습할 뿐 아니라 커피콩 산지와 가까워 괜찮은 커피숍도 많다 했다.
오롯이 리조트를 즐기자 마음먹고 예약한 리조트가 따분한 기분이 들어 작은 봉고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방콕과 사뭇 다른 풍경. 좁은 거리를 걸어 태국 북부 음식이라는 ‘카오 소이’를 먹었다. 쌀과 계란으로 만든 면을 카레 맛 코코넛 베이스와 곁들여 먹는 국수. 조금 맵고 짰지만 남편은 내심 맥주와 먹으니 좋다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World Latte Art Champion 수상 트로피가 진열된 로컬 커피집에서 치앙마이 첫 번째 커피를 마셨다. 치앙마이 바리스타들의 프라이드가 대단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사계절이 더운 나라에서 뜨거운 커피 메뉴를 권할 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따뜻한 커피는 꽤 맛있었고 커피숍은 에어컨으로 아주 시원했기 때문에 괜찮았다.
리조트 봉고 시간에 맞춰 3시간 동안 님만해민 근처를 돌며 크고 작은 상점을 구경했다. 곳곳이 원초적인 동남아시아 느낌이었지만 꽤 세련된 분위기의 상점도 더러 있었다. 갑자기 해가 떴다가 이내 비가 내려 골목 구석 낮은 모서리는 잠기고 신호를 기다리던 우리도 쫄딱 젖었다.
비가 내려 조금 늦게 도착한 봉고에 올라 ‘만약 우리가 아이와 함께 여행에 왔다’ 고 상상하며 대화를 나눴다. 비가 오는 순간 호텔로 복귀. 물론 택시를 바로 잡아 복귀. 아니 비가 올 것 같으면 외출 자체를 안 했을 것이다. 아니 치앙마이에 안 왔을 것이다. 제주도는 갈 수 있었을까? 아마 이유식 뷔페가 있다는 호텔에 묵는다면 갈 수도 있겠다.
여행 가방에 넣어왔던 가이드 책을 열어보니 지금이 우기에 속한다 했다. 큰 파라솔 아래 썬배드를 가까이 두고 책을 읽고 풍경을 보았다. 비 오는 수영장에 들어가 수영을 하기도 하고 빗방울의 파장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했다.
빨간 땡땡이 식탁보가 멋진 곳에서 조금 일찍 결혼기념일 축하 저녁을 먹었다. 콜키지 프리라는 정보를 조금 일찍 알아내 어제 비행기 타기 전 면세점에서 멋진 샴페인도 한 병 사논 참이었다.
만 2년 부부로 아내로 살았던 대부분의 시간이 좋았다. 겁이 많은 내가 현관문의 이중 잠금을 더러 잊고 잠들기도 하고,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노래도 부르고 수다도 떨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여전히 어제 끓인 찌개와 오늘 끓인 찌개의 맛이 다르지만 나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남편이 있고, 매일같이 잔소리를 해도 언제나 어지르는 남편 뒤에 내가 있으니 이 정도면 됐다.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뭐. 내년 결혼기념일엔 그래서 어디 갈 거야? 나는 이탈리아 남부나 베를린 가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