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태국 치앙마이 네 번째 이야기.
올드타운에 들어오고 마침내 비가 그쳤다. 지난 며칠은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챙기는 일이 번거로울 정도로 흐렸다. 눈이 부신 날씨가 반가운 우기. 하지만 해가 쨍쨍하다가도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작은 우산을 챙겨 나갔다. 그저 준비하거나 당하거나 둘 중 하나뿐인 여행자의 숙명이자 옵션.
한국에서 오기 전 미리 봐 둔 요가 스튜디오에서 90분에 300밧짜리 하타요가를 들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나 티셔츠를 입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곳. 하얀 벽 사이사이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나무가 정말 아름다웠지만, 마지막 이완 자세에서 거의 천국을 맛보았다 표현할 정도로 강도 높은 수련을 했다.
쨍한 날씨에 요가 수련까지 하고 나오니 이 곳이 치앙마이인지 아니면 한국의 산골 마을인지 구분이 안 갔다.
사실 낮잠을 한두 시간 자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래도 여행 중이라는 일말의 마음가짐으로 치앙마이 대학교 근처 로컬 음식점에 갔다.
이동하던 차 안에서 남편과 함께 ‘이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상상을 했다. 이렇게 아침이면 눈을 뜨고 입맛이 채 돌기도 전에 아침밥을 대충 먹고 해가 나면 걷고 비가 오면 쉬는 생활을 30번만 더 하면 한 달 살기가 되겠노라고.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은 대부분 이렇게 느렸다. 조금은 초현실 같았다.
태국 북부 스타일의 가정식을 조금은 어렵게 먹고 치앙마이 대학교 후문가의 반캉왓 예술 마을에 갔다. 작은 시골길과 우거진 나무 사이에 덩그러니 자리한 마을.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과 공예품을 구경하고 구입했다. 작은 나무 포크 두 개를 사서 나오는 내 머릿속에는 ‘이 포크 내가 언제 쓰려나?’라는 시답지 않은 생각이 스쳤다. 고작 일주일도 안 되는 여행에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저녁이 되고 일요일마다 올드타운을 가로질러 열린다는 선데이 마켓에 갔다. 로띠도 먹고 꼬치도 먹을 생각에 들떠 나갔지만 갑작스레 내리는 비 때문에 근처 국숫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서울 집 근처 ‘소이 연남’과 정말 똑같은 맛이라 남편은 실망하고 나는 즐거웠다.
하루 종일 입고 다닌 고작 만 원도 안 되는 나시티 모양으로 목과 어깨가 모두 탔다. 여행 중 맑은 날이 없어 마음껏 햇살에 온 몸을 드러낸 덕에 치앙마이 도장을 찍은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걷다 숙소로 돌아와 누우니 이 상황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조금 헷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