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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01. 2020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2020년 여름. 제주에서 보낸 일주일 - 숙소 ‘일월의 미’

제주 동쪽 작은 돌담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매일 아침 동이 트면 이른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중천에 뜨면 집으로 돌아와 해를 피했다. 외식이 어려운 때라 매 끼니 부엌의 불을 켜야 했지만 그 덕에 바닷가와 가까운 마트로 매일 산책 갈 수 있어 좋았다.


밤이면 하루 종일 스친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며 부디 모두 안전하고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작은 시골 동네에 어둠은 빨리 아침은 일찍 찾아왔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나의 여름휴가 일정은 부모님의 제주 한 달 살기 첫 번째 일주일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완도발 제주행 배편으로 나는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 편으로 제주에 도착했다. 50분의 짧은 비행. 비행기 타기 전 날 악몽까지 꿔가며 걱정했던 여정은 어이없고 허무할 정도로 짧았다.


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항 제주 국제항 터미널에서 부모님을 맞이했다. 차에 가득 싣고 온 식재료와 생활용품에 놀라워하며 제주 동쪽에서도 가장 조용한 동네라 불리는 ‘하도리’에 도착했다.


부모님의 제주 한 달 살기 숙소는 총 세 곳으로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스무날로 나누어 예약했다. 올레길 완주가 유일한 계획인 만큼 동쪽에서 시작해 남쪽, 그리고 서쪽으로 끝나도록 숙소를 잡았다.

첫 번째 숙소는 이름마저 귀여운 하도리동동의 ‘일월의 미’.


낮은 돌담과 그 안의 더 낮은 집 지붕 덕에 큰 태풍이 몰아쳤던 밤들을 평안하게 보냈다. 작지만 알찬 거실과 방 두 개. 작은 부엌과 여유로운 화장실까지 우리 식구가 일주일을 보내기에 좋았다.


집 안 곳곳에 있는 자수 액자들과 모빌들도 멋졌다. 넉넉히 준비해주신 식기류와 수건, 그리고 깔끔하게 정돈된 침구류까지. 마치 이 집에서 한 달은 산 사람들처럼 익숙하게 부엌에 불을 넣고 손걸레질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집 앞엔 마당이 있었다. 작은 꽃밭과 수돗가, 그리고 평상이 있던 꽤 널찍한 마당에서 손빨래를 하고 등산화를 닦아 바람과 햇살에 바싹 말렸다. 여느 여행보다 더 숙소 의존도가 높은 시기라 마당이 있음이 어찌나 감사했던지 모른다.


나팔꽃이 활짝 피어있던 동트는 아침, 부모님을 올레길 시작점에 모셔다 드린 후 집에 오면 이웃 곳곳에서 분주한 아침 소리가 났다. 옆 집 강아지가 짖기도 하고 마당 평상 아래 고양이들이 와서 간식을 기다리기도 했다.



비일상적인 시기에 선물 같았던 평화로운 일상.


살면서 이렇게 가족끼리 단란하게 일주일을 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 태풍으로 제주가 흔들리던 날, 비가 그친 틈을 타 잠옷바람으로 마당에 서서 로즈마리 풍욕을 한 기억. 선반에 있던 퍼즐을 꺼내 몇 시간이고 맞추다 결국 포기한 기억. 캠핑의자를 조립해 책을 읽고 깜빡 졸며 밤을 맞이했던 기억.


서울에서보다 더 오래 집에 머물며 서로를 관찰하고 옹기종기 모여 내일 걸을 올레길을 지도에서 찾아 표시했던 여러 밤을 보내며, 여름휴가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님의 안전한 올레길 걷기에 쏟아부었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제주를 떠나오는 날 제주 곳곳에도 집합 금지 명령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공항으로 떠나는 내 뒤로 부모님은 조심히 건강히 잘 지내라는 인사를 쉼 없이 내뱉으셨다. 우리 모두 평안하기를 그리고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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