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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08. 2020

꼬닥꼬닥 걷는 올레길

2020년 여름. 제주에서 보낸 일주일 - 올레 1-1 우도 트레일

425km 26코스. 각 코스당 15km 내외로 제주 한 바퀴를 빙 둘러 만들어진 제주도 올레길은 걷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더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한다. 해안을 따라 멀리 돌아 걷거나 수풀 속을 탐험하거나 하는 개인의 취향.


부모님이 걷던 기록들을 살펴보면 아침 7시부터 아무리 늦어도 오후 12시면 한 코스가 끝났다. 코스당 평균 4-5시간이면 충분해 보였다.


게다가 워낙 이른 아침 운동에 익숙한 분들이라 해가 뜨면 감자와 고구마를 가방에 넣고 유유히 길을 나섰다가 오후면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만끽하셨다. 흡사 전형적인 농번기 옛 농부의 모습을 닮아 몇 번이나 웃음이 나왔다.



제주 올레길 1-1 코스 (우도 트레일)

매일 아침 나는 10년 차 장롱면허를 쥐고 올레길이 시작하는 곳에 부모님을 내리고 종점에서 부모님을 픽업했다. 부모님의 올레길 완주 목표를 가장 안전하게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만 한 게 없었다.


올레길 시작과 끝 사이, 내게 주어진 아침 2-3시간의 짧은 자유시간 동안 나는 주로 다시 잠에 들었고 빨래방에 들러 부지런을 떠는 것과 같은 아주 일상적인 것들을 했다.



유일하게 함께 걸었던 올레길은 우도 한 바퀴를 빙 둘러 걷는 우도 트레일 코스, 올레 1-1 코스였다. 적지 않은 제주 여행 중에도 막상 발길이 닿지 않았던 우도를 올레길로 가게 될 줄이야.


오전 8시 성산항에서 출발하는 첫 배를 타고 우도에 갔다.


3시간에 걸쳐 쉬엄쉬엄 올레길을 걷고 매시 정각 하고수동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제주로 나왔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서빈백사와 이어지는 작은 바닷가에 앉아 더위를 식혔다. 그 사이 관광객들이 하나 둘 우도로 들어왔다.


우도에는 특별한 몇몇 사유를 제외하고는 자동차 진입이 제한되고 있어 관광객들은 작은 전기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돌며 우도 관광을 했다.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고 짬뽕을 사 먹으며 한껏 들뜬 여행객들과는 사뭇 다른 등산복 차림의 내가 이 날만큼은 우쭐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도의 올레길은 정말 멋졌기 때문에 전기차로 닿을 수 없는 우도의 진면목을 보았기 때문에.



더군다나 이른 오전 시간 부모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며 우도를 걷는 건 어떤 경험에도 견줄 수 없었다. 게다가 우도 한 바퀴를 거의 다 돌 때쯤 만난 검멀레 해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졌다. 압도적인 풍경.


우도 검멀레 해변

해변가에서 유유자적 해수욕을 즐길 법한 친절한 해변은 아니었지만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바다 아래 풍경이 멋졌다.


검멀레 해변의 검멀레는 검정 모래라는 뜻인데, 그 모래는 아니 정확히는 파도에 쓸려 깎인 돌멩이는 우도의 옛집의 재료로도 사용되었다고 했다. 파도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주 단단했다.

아이슬란드 레이니스파라 해변

아이슬란드의 위험하지만 아찔하게 멋진 레이니스파라 해변이 떠올랐던 풍경. 자연이 오랜 시간 만든 풍경은 아무렴 사람이 곱게 깎아 만든 것과 또 다른 차원의 신비로움.



내가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매일 새벽같이 부모님의 올레길 걷기는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올레길을 걸으며 ‘클린 올레’ 캠페인도 함께 하고 있다. 코스별 올레길 안내소에 들러 쓰레기봉투를 수령하고 올레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담아 클린하우스 (쓰레기 수령 장소)에 버리면 된다.


어느 날인가 길고 힘든 올레길을 걷는 중에 쓰레기마저 너무 무거워 코스를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옛 길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쾌하지 않은 것들을 남기는 걸까. 올레길을 걷는다면 ‘클린 올레’ 추천합니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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