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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7. 2023

10월 16일 월요일

마침내 이사를 했습니다

1. 친정

6개월의 친정 살이가 끝났다. 아기의 눈에 미처 빛과 초점이 닿지 못했던 지난봄에 떠난 집이었다. 아기는 친정에서 목을 가누었고, 몸을 뒤집어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알아보기도 하고 본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기어가 안기기도 했다. 어른 넷이 아기 하나를 둘러싸고 매일같이 웃고 걱정하며 그렇게 계절들을 보냈다.


여름이 지나고 여행을 다녀오면 진작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여전히 수면유도제를 복용하고 때때로 불안감이 올라와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날들이 이어졌다. 이사를 결심하기 직전까지 친정의 작은 내 방에서 오손도손 치킨을 뜯어먹는 우리 부부가 귀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부모님께서는 어느샌가 더 남아있기를 권했고 나도 남편도 아기를 재우고 맞이하는 자유시간과 저녁산책을 마다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사를 감행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우리 세 가족도 어쩌면 이제 잘 지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였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집과 대출과 전세와 복직 그리고 아기의 어린이집 등등 정말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목을 잡았다.


두 달 정도. 그저 두 달 정도의 마음을 먹었을 뿐이다. 겨울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한 번 해보자고. 나와 아기가 하루종일 붙어있는 그런 시간들을 한 번 버텨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쓸고 닦았다. 아기의 물건이 들어오고 다시금 아기의 방이 꾸려졌다. 이사 첫날, 아기에게 선물처럼 만들어준 (그러니까 우리 부부의 모든 것을 치워 만든) 아기의 놀이공간에서 아기는 엉엉 울었다. 안아달라고 안아달라고 애원하고 할머니와 엄마와 아빠의 등을 보며 엉엉 울었다. 그럼에도 다행히 잘 잤고, 잘 먹었다. 그저 더 많이 안아주면 해결되는 문제라면 기꺼이 안아줄 수 있다.


이사를 마치고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몇 번, 아기를 함께 돌봐주실 돌봄 선생님을 처음 뵀다. 면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잘 부탁드린다는 상호 인사와 같은 절차였다. 이번 주는 아기와 동네를 부지런히 산책해보려고 한다. 더 추워지기 전에 이 동네에 정을 붙여야 나도 나도 우리 모두 건강하게 겨울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2. 공사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한 게 그러니까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리고 집을 6개월 정도 비우고 돌아오니 말 그대로 집이 낡아버렸다. 샤워 호스에 녹이 슬고, 그릇들마다 먼지와 기름때가 앉았다. 집안 곳곳에 찌든 때가 생겨 벗겨내는데 한참 애를 먹었다.


청소를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운 어느 날, 아랫집에서 갑자기 누수가 발생했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아마도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발생한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공사하고 줄곧 사는 동안 아무 문제도 없던 집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친정에 6개월이나 가있었으니 본격적인 거주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누수라니. 가서 보니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노후화된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인지, 혹은 정말 2년 전 공사 때문인지 원인을 확실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수도관 공사를 시작했다. 아랫집에도 100일 밖에 안 된 아기가 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아기는 순했고, 공사도 빨리 끝났다. 여러 번 보수작업을 마친 끝에 누수되는 부분을 보강해 냈다. 아래층 아기가족이 우리 집을 구경하고 싶다고 해 거실과 화장실, 아기 방을 보여주었다. 아기는 낯선 공간에서도 방긋방긋 웃었다. 우리 아기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피 같은 35만 원을 들였다. 으아. 보험 청구나 하자.


3. 운전

임신과 동시에 시작했던 장롱면허 탈출은 출산과 동시에 종료됐다. 운전대를 놓는다는 의미의 종료라기보다 이제 장롱면허고 뭐고 육아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보다 수월하게 운전을 한다는 의미.


친정에서의 시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들러 청소도 하고 약간의 자유도 누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운전을 다시 시작한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엄마에게 “운전하니까 너무 좋아!”라고 하니 엄마도 우리 남매를 낳고 운전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아기를 키우는 일이 어딘가 쓸모없고 효용 없는 일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때마다 운전을 하면 뭔가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엄마도 나도 같은 과정을 겪은 것뿐이구나. 누구라도 수월하지 않고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 거구나.


아기를 뒤에 태우고 혼자 운전을 하는 날엔 얼마나 더 큰 해방감이 들까. 물론 아기는 울고불고 난리겠지만 그래도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올 겨울에는 한번 해보자! 우리 둘의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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