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영하권. 길고 긴 일주일이 걱정되는 월요일.
1. 자유부인의 주말
예쁘고 멋들어진 음식점을 알아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모두가 좋은 향기를 풍기고 와서 앉아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실 것 같은 브런치집 몇 곳과 Y2K 스타일의 20대가 가득 찼을 법한 카페들을 검색하던 참이었다.
아기 엄마 둘이 만나는 주말 그것도 오전이라면 아쉽지 않은 선택지여야 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의 뒤로 “고깃집 오픈런 어때요?”라고 묻는 동행의 말에 쉽사리 거절의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인생의 마지막 음식으로 먹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어도 당장 삼겹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의지가 생겼다.
일과 육아 사이 틈틈이 고깃집을 알아보고 웨이팅 전략을 세웠다. 얼마 만에 가는 고깃집인데 대충 아무 데나 갈 수는 없었다.
BTS가 다녀갔다는 고깃집에 웨이팅을 걸고 근처 커피숍에서 짧고 굵은 캐치업을 마친 후 고깃집에 들어갔다. 이렇게 의욕적인 아침 자유부인은 오랜만이었다. 아침 11시 30분이었지만 술도 한 잔 하고 라면사리까지 넣어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 털어 먹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도 아기도 낮잠을 자고 있었다. 곁에서 쪽잠을 자고 맞이한 오후. 언제 고기를 먹었는지 내가 술을 마시긴 한 건지, 오전과 오후의 엄청난 괴리감에 허탈한 웃음이 나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다. 아침 고기 추천.
2. 생일
연차를 내고 맞이한 생일 아침. 아침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엄마~ 다 잤어요.”라고 부르는 아기의 부름에 남편이 쪼르르 달려 나갔다. 소란스럽긴 했지만 10분 정도 더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눈을 떴다.
매 년 여름나라로 도망치듯 떠나던 생일이었는데, 아기를 임신하고 또 출산하면서 첫 해에는 아기가 일찍 자주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고, 두 번째 해에는 출근해서 퇴근까지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보낸 게 불행 중 다행, 올해는 찜질방에서 늘어지게 책도 읽고 낮잠 자는 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여름나라까지 가지 않고도 매 해 풍성한 생일을 챙겨 먹는 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작고 예쁜 케이크를 사서 셋이 오손도손 나눠 먹었다. 케이크 초 불기에 신이 난 아기가 5번도 넘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기가 꼭 양가 할머니들에게도 들려줘야 한다며 부지런히 전화를 걸라 재촉하는 통에 양가에서도 넘치는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작은 인간과 함께하는 매 해의 새로운 생일이 기대되는 나. 그래도 내년에는 남편이 꼭 식당쯤은 미리 예약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작고 반짝이는 선물도 곁들여주면 더 좋고. 여보 미리 고마워요.
3. 아무튼, 레코드
얼마 전 책을 빌렸다. 서점에서 매번 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입하는 아무튼 시리즈의 (지나간, 하지만 나에게는 초면인) 신간 <아무튼, 레코드>였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 못해 엄청난 덕후인 작가, 그러니까 김밥 레코드의 직원으로 활약했던 스윗소로우 성진환 님 덕에 플레이리스트가 한층 풍성해졌다. 책에서는 바이닐이나 CD로 소장하는 것을 추천하는 곡과 앨범들이었지만 다행히 스트리밍이 가능한 곡들도 더러 있어 잔뜩 모아 듣고 있다. Yamashita Tasuro의 Theme of Mirai(이 곡도 추천곡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와 Ohasi Junko의 Sweet love. 그리고 쳇 베이커의 ‘She was too good to me’ 앨범의 수록곡들. 어쩜 이렇게 좋은 곡들이 30년이 가깝도록 꾸준히 회자되고 발견되는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조금 지루했던 플리에 한 줄기 강한 빛이 되어준 <아무튼, 레코드>.
매번 아무튼 시리즈의 작가들은 세상을 바꾸는 덕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게 어느 분야건 일정 정도의 관심으로 시작해 그 분야를 디깅하고 탐구하다 못해 결국은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덕후들. 올해는 조금 더 부지런히 작가들의 덕질을 마주하고 마구마구 설득당하는 한 해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