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월요일

눈이 흩뿌리는 올해의 두 번째 월요일

by 나무

1. 건강

몇 년 전부터 건강검진에서 나오는 이상소견들이 있다. 매번 흐린 눈으로 지나가고 있긴 하지만 종종 뚜렷한 이유 없이 찾아오는 두통이나 말도 안 되는 피로감, 복통이 찾아오면 그제야 건강검진 결과지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얼마 전에도 갑자기 뒷골이 당기기 시작하더니 저녁 무렵에는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다행히 남편이 함께 집에 있어 육아를 전담해 주었지만 약을 털어 먹어도 여전히 휘청거렸다. 결론은 추운 날 차가운 음식 먹고 난 배탈이었지만(음식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던 게 딱 급체였다) 그 순간만큼은 꼭 건강을 1순위로 생각하며 살겠노라 다짐해 보았다.


올 한 해는 다른 건 몰라도 면역을 끌어올리는 것만큼은 해내고 싶다. 몸에 좋은 걸 하는 것보다는 몸에 나쁜 것들을 하나하나 소거해 나가는 마음으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마음을 아로새겨야겠다. (이 단어 진짜 오랜만에 쓰네.)


2. 떡볶이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쌀떡볶이의 쫄깃함과 밀떡볶이의 텁텁하지만 뭉근한 식감, 달큰한 떡볶이부터 밥까지 볶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즉석 떡볶이, 핫도그를 넣어 먹어야 하는 후추 가득 떡볶이까지. 사실 떡볶이를 먹을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투명한 색깔을 띠는 양배추인데, 아무리 뜨겁고 아무리 매워도 그것만큼은 꼭 먹어주어야 떡볶이를 먹은 기분이 든다.


오늘 저녁 잠깐 짬이 나 바로 남편과 차를 타고 또보겠지 떡볶이로 내달렸다. 입사 후 처음 맞이한 '재택'이라는 엄청난 행운 덕에 17:00:01에 바로 공적인 나를 떠나보내고 사적인 나의 스위치를 킨 것이다. 짜릿해!


버터갈릭감자를 곁들여 먹는 또보겠지도 일품이지만, 오늘은 떡볶이 그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뜨겁고 맵고 뜨겁고 맵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단무지를 3번씩 4번씩 리필하게 되고 어느새 치즈 토핑을 추가한 밥이 나와 있다. 먹고 왔는데도 또 먹고 싶은 생생한 장면. 오늘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엄마 둘과 딸 둘이 한껏 붉어진 뺨을 비비며 또보겠지로 들어왔다. 초등학생이나 됐으려나? 싶었는데 엄마 두 분이 꽤 일사불란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테이블을 정리(또보겠지는 테이블이 금세 꽉 차기 때문에 약간의 정리가 필요.)하는 걸보고 아 저 친구들 오늘 정말 맛있는 떡볶이를 먹겠구나! 조금 맵긴 하겠지만 맛있는 경험이 될 거야.라는 마음이 들었다. 35개월 우리 딸은 언제쯤 나랑 떡볶이를 같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3. 재택

여러 사정이 있었다. 재택을 하지 않아도 됐지만 나는 재택을 기어코 선택했다. 이틀의 선택지 중에 하루는 연차, 하루는 재택. 오늘 아침 잠옷을 벗지 않은 채 아이를 등원시키고 패딩만 대충 껴 입은 채 커피를 사러 갔다.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인 아침을 먹이고, 입히고, 보내고, 외출까지 한 다음 커피까지 사 올 수 있게 되다니. 도대체가 직주근접을 표방하는 회사원의 삶은 얼마나 만족스러울지 너무 얄밉고 부러워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코로나 시절에 남편이 한창 재택을 하면서 집에 가져다 둔 모니터를 꺼내기도 전에 일이 몰려들었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켜켜이 쌓여있던 메일과 공문들을 읽고, 모니터 2대면 30분 안에 마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오전 근무시간 내내 겨우겨우 했다. 오랜만에 킨 노트북에 적응하는 시간도 꽤 오래 걸렸다.


점심을 먹고, 눈에 보이는 집안일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 재택근무 일지도 써서 내야 된다고 하고 보고서도 써야 된다고 하는데 대체 오늘 처리한 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어느 티끌까지 모아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모든 번거로움을 차치하고 또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재택을 선택하리라. 집에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길어지니 피로도가 확 줄어들었다. 출퇴근하면서 만나는 여러 운전자들과 직장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에 지쳐있던 참이었다.


오늘 업무 중간중간 꼭 하려고 생각했던 나름의 일탈을 절반도 하지 못한 채 퇴근시간을 맞이하고 말았지만, 오늘은 휴가 중인 남편이랑 커피도 사 먹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오붓하게 떡볶이도 먹고 또 이렇게 따뜻한 차에 앉아 월요일기도 쓰니 얼마나 좋은 날인지. 어디선가 봤던 글처럼, 우리는 오늘도 좋은 날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