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아이패드 키보드로 쓰는 월요일기!
1. 스타벅스
우리 부부는 아주 작은 원룸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다음 집은 원룸과 같은 건물의 꼭대기 층이었고, 인생을 조금 더 어른스럽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대단지는 아니었지만 꽤 관리가 잘 되어 있던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다. 우리의 신혼추억이 가득한 연남동은 매일 즐거움과 기쁨이 함께였다. 집 문을 열고 나가면 매일 2~3시간씩 줄이 길게 늘어지는 식당들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는 평일 저녁 느지막이 골목골목을 정복하며 동네를 누렸고, 주말이면 여유로운 안산 자락길이나 연희동 그리고 한강으로 뛰쳐나가 계절을 즐길 뿐이었다.
연남동 신혼집에 놀러 온 엄마는 "이렇게 살다가 나중에 아파트 살면 진짜 심심하겠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것은 집 근처에 커피숍 하나 오픈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릴 만큼 때로는 따분하고 지루한 삶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우리 부부가 처음 들어갔던 아파트 주위는 사무실과 코스트코뿐이었다. 그 시절 우리 부부가 가장 기다렸던 건, 집 앞 건물에 몇 달째 걸려있는 ‘2020년 0월 스타벅스 입점’ 플랜카드가 사라지고 하루빨리 스타벅스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스타벅스가 입점하고 얼마 뒤, 우리는 이사를 했다. 그 동네를 떠나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
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말이면 "집 앞에 있는 '커피 한 잔(해석: 스타벅스)' 갈까?"라고 묻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이면 물웅덩이를 건너가기도 하고, 맑은 날엔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책을 하며 스타벅스를 찾는다. 아기는 도착 전부터 메뉴를 줄줄 읊으며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귀여운 고민을 시작한다. 요거트를 먹는다며 노래를 부르며 출발했지만 도착하니 젤리가 손에 들려있는 날도 있고, 오늘은 꼭 동그란 빵(베이글)을 먹을 거라고 선포하는 날도 있다. 고사리 같은 손에 자기 몫의 음식을 쥐고 계산대 앞에 능숙하게 서 있는 우리 집 36개월 아기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웃기고 대견한 지. 스타벅스는 알까. 이토록 키즈프렌들리 한 환경이 얼마나 소소한 행복이고 육아 중 믿을 구석이 되는지. 아기가 조금 더 자라 또다시 겨울이 오면 핫초코도 시켜 먹고, 케이크도 한 조각 나눠 먹는 소소한 일탈을 해 보아야겠다. 그때까지 부디 망하지 말고 우리 곁에 남아줘! 꼭이야!
2. 좋아하는 마음
대부분의 아기들은 자기만의 좋아하는 마음을 키우며 살아간다. 어떤 아기들은 공주와 하츄핑에 심취하기도 하고, 다른 아기들은 자동차나 탈 것 이윽고 동물과 공룡에 빠져들기도 한다.
태어나 치마라고는 여름에 더워서 입히는 얇은 원피스 외에 한 번도 안 입어 본 우리 딸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건 기차와 공룡이다. 갑자기 엘사 드레스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보다 조금 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 다행이었다. 자주 가는 박물관에서 공룡을 접한 후, 틈만 나면 티라노사우르스나 트리케라톱스 같은 어딘가 낯설지만 익숙한 주문 같은 공룡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급기야 공룡 장난감을 꼭 갖고 싶다고 조르는 통에 부랴부랴 다이소에 가 공룡알 레고를 샀다. 물론 구매하는 그 짜릿한 기쁨만 간직한 채, 내가 한 땀 한 땀 이어 붙여 안킬로사우르스를 만들어주어야 했지만 인형도 스티커북도 아닌 새로운 장난감을 지목해 사달라고 하는 게 신기했다. 너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마침내 생기는구나.
이러다 어느 날에는 하늘하늘한 공주옷을 품에 안은 채 여름이고 겨울이고 그 옷만 입겠다며 입을 삐죽거리는 때가 찾아오겠지만, 공주보다 공룡을 먼저 알아차린 내 딸에게 엄마는 큰 박수를 보낸다.
3. 한라산
얼마 전부터 한라산에 가고 싶어 졌다. 눈이 소복이 쌓이는 도심을 볼 때, 조금 더 그 마음이 강해지기도 한다. 아주 젊고 체력 좋았던 20대의 나는 한라산을 가기 위해 제주행 첫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하루를 꼬박 들여 한라산에 갔다가 저녁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던 날들. 여름이면 사라오름에 물이 차올랐으려나 하는 기대감에 산을 올랐고, 겨울이면 영실코스의 완만한 동산에서 멋진 눈꽃을 보기를 고대하며 길을 나섰다. 올 겨울엔 크고 작은 눈을 자주 봐서 그런지 정말 한라산 생각이 많이 난다. 내년 겨울에는 꼭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