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월요일

어느덧 2월의 첫 번째 월요일

by 나무

1. 아기의 새벽호출

한 보름 정도 됐을까. 아기는 새벽 얕은 잠마다 엄마아빠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날들은 짧은 대답에도 금세 잠들었지만 때때로 같이 자자며 떼 부리며 잠을 설치는 날도 있었다.


아기와 방을 분리하여 잠든 지 32개월째. 아기가 태어나 사실상 자아가 생기기 전부터 분리수면과 수면교육에 강박을 가지고 집착해 온 나로서는 이번 변화가 썩 달갑지 않았다. 어떤 원인으로 잠을 못 이루는 건지 이제는 이해를 할 수도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저 같은 시간에 같은 패턴으로 눕히면 잠에 들어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는 ‘수면 코딩’이 되어있던 내 딸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조금 의아하면서도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내 목소리가 안 들릴까 봐 걱정되니까 문을 열고 자 줘!"


아기는 며칠에 걸쳐 주문처럼 매일 외쳤다. 밤 사이 도움이 필요할 때 엄마나 아빠가 본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안심하고 잘 수 있도록 문 앞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다. 이른 출근으로 아기 곁을 지키지 못한 날에는 결국 남편이 작은 아기침대에 들어가 함께 자주기도 했다. 새벽의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어느 날은 9시가 다 되도록 늦잠을 자는 날도 있었다. 어떤 방법도 결국 나아지지 않고 더 많은 걸 바라게 되는 아기를 보며, 조금 야속하지만 그저 말로 달래보기 권법으로 아기를 웃기고 설득해 가며 저녁을 맞이해 보기로 했다. 매일 밤, 안방과 아기 방 문을 조금 틔워두고 우리는 캄캄한 집 안에서 대화를 한다.


“잘 자!”

“엄마도 잘 자!”


우리는 이제 아기의 새벽호출에 뻔뻔스럽게 눈도 뜨지 않고 “응!”이라고 화답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3시든 5시든 상관없이 늘 평화롭고 평온한 목소리로 몇 번이고 굿나잇 인사를 전하고 나온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지난 3년, 매번 휴대용 침대를 싸매 들고 다니며 여행지의 낯선 방에서도 덩그러니 혼자 씩씩하게 자곤 했던 아기를 돌이켜보면 지난 보름의 수고로움은 해봄직 한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지금은 무엇이든 아기의 마음이 안심이 된다면, 그래서 더 이상 밤을 무서워하지 않고 다시 잠에 들 수 있다면 언제든지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2. 세상을 바꾸는 집요함

예전 직장에 만난 어떤 사람은, 엄청난 덕후였다. 적당한 유머를 가지고 여러 신변잡기에 능했다. 그 와중에도 종종 두더지가 파둔 굴처럼 몇몇 분야에서는 아주 특출 난 깊이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대단한 사람. 때때로 나와 취향이 맞는 분야가 발견되면 그 이야기를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새로운 자료들을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럼에도 종종 시간이 부족했지만 다른 곳으로 관심이 옮겨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잠시 시들해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작당모의하며 지난 자료들을 들춰보며 즐거워하곤 했었다.


자주는 아니어도 어쩌다 업무와 관련된 분야에 동시에 빠져들던 시절에는 온갖 유튜브와 다큐멘터리의 링크까지 보내가며 주말에 이것들을 복습해 와서 다음 주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텅 빈 파워포인트 화면에 업무 절차와 사고 경위, 해결 방안, 음모론(이게 정말 덕후의 가장 큰 매력)까지 모두 탈탈 털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일련의 모든 과정을 통해서 나는 그에 비해 한참 얕지만 일반인보다는 조금 깊은 지식을, 조금은 넓어진 관심 분야를, 그리고 조금은 포용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배웠던 것 같다. 아주 집요한 덕후 덕에 내가 가진 세상이 아주 조금 확장되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귀한 경험이었으니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덕후들 말고도 꼭 내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집요한 사람들과 공간들도 있다. 카페가 아닌 ‘브랜드’라 일컬어지기 원하는 ’리카 바이 파프리카‘가 바로 가장 최신의 관심사였다. 원래 있던 올드페리도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 생긴 곳. 이미 가기 전부터 인테리어의 전 과정을 담은 릴스와 대표 내외의 인터뷰, SNS까지 내가 수집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수집한 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좋아함’의 에너지가 정말로 크고 굉장했다. 어쩜 같은 공간을 이렇게 도넛집에서 카페로 탈바꿈한 건지. 화장실 거울, 조명의 길이, 테이블과 의자의 조화 등 크고 작은 모든 것에 이유가 있고 손이 안 간 곳이 없는 섬세하고 집요한 공간에서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이렇게 멋진 취향과 의도와 추진력을 가진 공간이라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 같은 인생보다 예측하고 계획하며 타이트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집요한 인생이 좋다. 좋다는 표현보다는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건가. 나도 조금 더 멋진 덕후가 되고 싶다! 바꿀 수 없는 것은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한남동 ‘리카 바이 파프리카’


3. 복분자 맥주

양주잔에 복분자를 가득 넣고 그 잔을 맥주잔에 넣은 후, 복분자가 섞이기 직전까지 찰랑거리게 맥주를 따라서 섞어 마시면 정말 맛있다. 복맥. 까먹을까 봐 적어두는 레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