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월요일

아기의 생일인 화요일에 모른 척 올리는 월요일기

by 나무

1. 혼모노

최근 핫한 몇 권의 신간 중 가장 읽어보고 싶었던 '혼모노'를 완독 했다. 단편들이 모여있는 옴니버스 방식의 소설책. 매 단편이 끝나는 게 아쉬워 종이책과 전자책을 번갈아가며 일주일 꼬박 30분, 1시간씩 나는 시간들을 모두 모아 완독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각 단편들의 호흡이 아주 짧고, 순간 몰입도가 높아 읽는 내내 즐거웠다.


나보다 앞서 이 책을 읽은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좀 이상한 책 같았는데(첫 단편이 마음에 안 들었던 듯),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지는, 열린 결말의 책!'이라며 작가가 많은 공부와 탐구 끝에 쓴 책인 것 같다는 호평을 곁들였다. 덕질과 무당과 건축과 근현대사. 어느 것 하나 대충 쓰인 구절이 없어 제발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여러 독자들의 바람에 내 두 손 두 발도 모두 얹어본다. 꼭 박정민 배우 캐스팅 해주세요.


2. 구축의 슬픔

우리 아파트는 2000년에 지어진 준구축이다. 고쳐서도 못 쓸 구축이라고 하기에는 중장년층 즈음에 속하는 아파트. 적당한 주차난과 낡음을 모두 뒤로한 채 가장 불편한 점은 바로 혹한기의 세탁인데 이번 겨울엔 그 불편함이 거의 인내심의 끝자락에 맞닿아 있다.


세탁실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집이 베란다 외벽에 세탁기를 설치해 쓰고 있는 게 주 원흉인데, 그러다 보니 영하권의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이면 세탁기 사용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아파트 출입문에 붙기 시작하고, 세탁 방송이 하루에도 수 차례 울려 퍼지곤 한다.


지난 몇 주는 주말마다 빨랫감을 이고 지고 친정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아기의 낮잠이불을 모두가 쓰는 코인세탁방에서 세탁할 수 없는 나라는 엄마의 알량한 자존심. 다음에 이사 가는 집에서는 꼭, 겨울에도 세탁기를 마음껏 놀릴 수 있는 세탁실이 갖고 싶다. 나도 옷방이나 부엌 한켠에 만들고 말 거야 진짜.


3. 생일 축하해!

오늘은 우리 아기의 세 번째 생일. 마침내 36개월 1일 차가 시작된다. 어느새 아기 티를 많이 벗어내고 재잘재잘 어쩜 쉼 없이 떠들어 대는지, 생일에는 뭘 할 거냐는 둥, 자기가 아기 때는 왜 엄마 방에 자기 침대가 있었냐는 둥 아주 예전에 본 사진까지 다 들춰내서 물어보는 통에 36개월이면 이렇게 하루 종일 곁에서 말을 거는 게 맞는 건지 어이없는 의문마저 생기는 기분이다.


돌봄 선생님과 몇 시간 내내 머리를 맞대어 고른 핑크퐁 피아노와 드럼세트를 올해 첫 생일선물로 받고 어찌나 기쁜지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가서 감사합니다를 외칠 줄 아는 멋지고 사랑스러운 어린이로 성장한 우리 아기.


매 년 같은 레파토리지만 아기를 낳으러 가던 날 새벽녘의 불안함과 1인실을 잡았다는 안도감, 예상보다 아주 커다란 아기가 아주 못생기게 나와서 속상하면서도 낯설었던 기분까지 여전히 모두 생생하다. 그 찰나 같은 하루의 기억 위로 지난 3년이 추가됐다. 아기의 예쁜 모습, 나의 못난 모습, 친정 부모님의 행복과 남편의 눈에서 보이는 사랑 가득한 장면들까지. 나는 지난 36개월 동안 처음 전해 보는 형태의 사랑을 매일매일 만들어서 전하기 바빴다.


알람보다 먼저 나를 부르는 아기의 목소리에 못 이기는 척 몸을 일으켜 응하기도 하고, 아기가 먹다 남긴 반찬들을 모아 식사로 대체하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이 익숙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낯설지도 않은 엄마의 삶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꽉 채운 3년이 시작되는 오늘에서야 마침내 적응이 되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게 되었네.


그럼에도 아무리 하루 종일 나를 귀찮게 하고, 내 귀에 대고 수다를 떨어도. 혹은 더 이상은 엄마를 찾지 않는 어느 샐쭉한 미래의 너를 마주하더라도 나는 너를 언제나 지금처럼 사랑할 거야. 생일축하해. 나의 사랑 나의 아기. 엄마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와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