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나고 돌아온 2월의 마지막 월요일기
1. 여행
어느 날 문득 “주말에 후쿠오카에 가야겠어.”라며 아이가 갑자기 결연한 다짐을 내놓았다. 때는 2월 초였고, 그저 그런 말이겠거니 하고 하루이틀을 보냈는데 키즈노트에 ‘후쿠오카 가신다면서요. 잘 다녀오세요!’라는 문장이 등장했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돌봄 선생님(이모님)께서도 아이만의 후쿠오카 여행계획을 접하시곤 갑작스럽긴 하지만 즐겁겠네. 라며 화답하셨다.
놀랍게도 우리에겐 후쿠오카 여행 계획이 없었다. 길고 긴 설 연휴를 보내기 위해 야심 차게 부산 숙소며 KTX까지 모두 끊어둔 상황이었는데. 심지어 침대에 함께 누워 부산 호텔 사진을 구경하고, 너는 무슨 침대 쓸래 나는 이거 쓸 거야 등등 자연스러운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마친 상황이었는데.
일련의 충격과 기가 막힌 한 주를 지내고 맞은 토요일 아침.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오늘 가는 거지? 후쿠오카?”라며 너무도 당연한 듯 물어왔다.
그날 밤, 남편과 나는 뒤지고 또 뒤져 설 연휴에 이틀 앞서 출발하는 티켓과 숙소를 잡았다. 아이에게는 열 밤 정도를 자야 출발할 것이라는 것을 단단히 일러두며 “스티커를 다 채우면 일본 여행에 가는 거야.”라는 간접 기대를 낭랑하게 주입시키며 스티커판을 놀이공간 한쪽 벽면에 붙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아기와 함께하는 3번째 후쿠오카. 급하게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예산이 초과돼도 한참 초과되어 이럴 바에야 일정을 늘리자며 보태고 보태 장장 5박 6일의 여행 일정이 나왔다. 누가 후쿠오카를 6일씩이나 가냐며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다녀온 여행.
아이는 가기 전부터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싫다고 못 박았다. 대신 호빵맨 박물관(아이가 일본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오사카 여행 중에도 가고 싶다고 해서 고베로 기차 타고 넘어가 다녀온 이력이 있음)과 장난감 박물관, 그리고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요구하고 우리의 여행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아이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재잘거리며 강조했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한 장소들만 잘 추리고 모아 다녀온 여행. 가자마자 첫날 미열과 고열이 오가는 바람에 조금 걱정했지만, 그 이후로는 열도 떨어지고 날씨가 풀려 마지막 날에는 모래사장이 넓은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기도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아기는 낮잠을 이겨가며 비행기 안에서 꼭 알사탕 영화를 봐야겠다고 했다. 알사탕 영화를 보고, 기내식에 나온 과자와 우유를 먹고는 그제야 좀 자야겠다고 무릎에 누워 잠들었다. 이토록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여행이라니. 정말 36개월쯤 되면 작은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2. I have a dream
우리 집 아동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꽤 강한 의지를 가진 원장선생님의 지휘 하에 24개월이 지난 아이들부터는 강도 높은 특성화 교육과 특별 활동에 반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0세 반이던 시절에는 아주 단순한 동물체험을 했고, 1세 반에서는 한국인 선생님과 원어민 선생님이 번갈아가면서 들어오는 영어수업, 음악 수업, 미술 수업 등이 추가되었다. 막상 0세에서 1세로 넘어가던 시점에는 이렇게 작고 인간답지 못한(미안) 아이에게 영어나 미술을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오히려 5분이라도 더 눈 마주쳐주고 보육에 초점을 맞춰주길 바란다고 별도로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 영어 수업이 된 어느 시점부터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얼마 전부터는 어떤 영어 노래를 하염없이 흥얼거리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고 스티커 받았다!"는 자랑을 곁들이기 시작했다. 계속 듣다 보니 Angel이라는 단어가 들리기도 하고 Future라는 단어가 들리기도 해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그런 동요를 찾을 수 없어요. 나무님.'이라며 답하기를 거부했다.
범인은 I have a dream. 전설의 팝 그룹인 ABBA가 부른 맘마미아의 OST인 바로 그 곡.
아이는 그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특히 두 번째 구절인 'To help me cope, with anything'- 흥얼거리다 못해 단어를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습하기를 열흘쯤 되었을까, 마침내 발표회가 열렸다. 왜 엄마들이 우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현장. 물론 나는 울지 않았지만 맨날 울기만 하던 아기가 언제 저렇게 커서 본인의 두 다리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다시없을 대견함에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쳐주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성장을 목도하게 될지, 그리고 그 앞에서 얼마나 지난 시간이 아쉬워질지 모르겠다. 현재를 사는 것으로.
3. 월요일기
월요일기가 육아일기가 되는 기분이라 아무리 다른 글감을 떠올려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월요육아일기를 새로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나.
4. 밀려도 발행합니다!
오늘은 2월 26일 목요일. 첫 번째 꼭지는 지난주 월요일에, 두 번째 꼭지는 이번 주 월요일에 써두었다. 아무리 밀려도 2주가 쌓여도 나는 하련다, 발행.
내가 쓴 글을 내보이는 것도, 그마저도 수려하지 않은 일기를 급기야 밀리고 밀려 이상한 날에 발행하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은 순간들이 있지만 나는 내 삶을 산다. 이마저도 내 삶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