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월요일

보일러는 도대체 언제 끄는 걸까

by 나무

1. 봄

겨울이 길어졌다. 분명하다. 3월이 되자마자 해가 길어져 퇴근길이 밝아졌는데, 아직도 종종 영하의 아침을 맞이한다는 게 억울하기까지 하다. 안 그래도 봄이 얼마나 짧은데, 벚꽃 피고 지면 금방 더워지는데 언제 옷이 얇아지는 건지, 언제쯤 겨울 내내 신고 다니는 무릎까지 오는 반스타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지.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 개강

캠퍼스가 발 디딜 곳 없이 붐비기 시작했다. 9월보다는 역시 3월이 조금 더 몽글몽글하고 어딘가 붕붕 떠 있는 기분이 든다.


3월의 캠퍼스는 아직 고등학생 같은 친구들도 꽤 보이곤 한다. 서툰 화장법과 어딘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도 꽤 귀엽다. 학교 앞 음식점에 꽉꽉 들어찬 어린 친구들과 그것보다 약간 성숙한 대학생들.


학교로 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뽀얀 여학생을 만났다. 교내 동아리에서 기타도 치고,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날을 제외하고는 매번 모자를 푹 눌러쓰곤 부끄러워하며 구석자리에 늘 앉아있던 학생.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면 매번 카드를 손에 쥐어주고 학교 앞에서 쿠키랑 커피를 사 오라고 등 떠밀어 내보내곤 했다. 콧바람도 쐬고 자유롭게 산책도 하고 오라며 매번 여유롭게 보내고 나면 꼭 부리나케 돌아와 커피를 한 잔씩 나눠주던 친구.


1학년때 만난 그 학생은 내가 아기를 낳고 돌아오는 사이 어느새 3학년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앳되고 귀여웠지만 어딘지 노련해 보이는 게 종종 말이 잘 통하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얼마 전 그 친구의 졸업식날, 아주 예쁘게 차려입은 그러니까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어버린 여자 어른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개강과 휴학과 종강과 졸업은 이런 것이었다. 매번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반가움의 찰나들이 모이면 친구들은 사회로 나가기 마련인데, 벌써 몇 번의 졸업을 마주했음에도 여전히 낯설고 아쉽다.


3. 친구

지난주 금요일엔 친구를 만났다. (너무 깜깜한 밤이 되기 전에 집에 오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려 2시간 휴가를 내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돌이켜보니 이런 짤막한 자유시간을 누린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던지. 얘기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긴장도 풀려 눈이 조금씩 내려앉는 통에 하품도 줄기차게 나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즐거운 외출이었다.


주말 저녁에도 친구를 만났다. 물론 오전에도 만났지만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가 야심한 밤에 서울도 수원도 아닌 판교에서 만나 심야영화를 봤다. 천만이 넘어버린 영화를 이렇게 놓칠 수 없어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고속도로를 타고 만나 영화를 보고 헤어진 우리. 이 시간이면 차라리 다른 걸 하면서 노는 게 더 알찬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영화 보는 것도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애엄마의 인생.


연달아 이틀을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나니 그제야 남편에게 너무 힘들다는 말을 무미건조하게 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감정이 요동치는 상태로 전하기엔 요즘의 육아와 피로도가 걷잡을 수 없이 컸다. 회사도 육아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어 마치 깊은 물속에서 한 발짝도 못 나아가고 그저 체력만 가열하게 소진되는 기분이 드는 시간들. 잘 먹고 잘 자고 나를 잘 돌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