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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27. 2020

7월 27일 월요일

장마와 장마 사이 비가 그친 틈에 쓰는 글.

1. 여름의 궁 산책

지난 주말 종묘에 다녀왔다. 단 돈 1,000원이라는 입장료가 미안할 정도로 좋은 곳. 코로나로 관람객을 제한했던 지난 여러 달 동안 무척이나 걷고 싶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시생활의 갑갑함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다만 궁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적지 않은 인파에 그 여유로움은 금방 사그라들기도 하지만. 종묘만큼은 언제고 인파 없이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양반들과 왕족들은 서울의 이토록 좋은 배산임수 지역을 떡하니 차지하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던 걸까. 부럽다.


관람객이 없던 지난 계절 동안 각 궁의 관리처에서는 너 나할 것 없이 궁의 모습을 전해왔다. 비 오는 날엔 처마 끝의 빗방울을 찍어 올렸고, 해가 맑게 올라온 아침엔 예약 없이 보기 힘든 궁의 이모저모를 올려주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계절 너구리와 청설모 같은 동물들이 궁 곳곳에 여유로이 터를 잡았다는 소식도 있었다.


오랜만에 걸었던 종묘는 여름 그 자체였다. 해를 쬘 땐 끈적거리던 온몸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금방 식었다. 다른 궁에 비해 지난 왕조의 위패를 모셔 둔 정전은 가로로 길게 뻗어있어 파란 하늘과 빽빽한 나무 숲에 더 잘 어울렸다. 어쩔 수 없이 위패를 들고 걷는 ‘신로’를 여러 번 넘나들었지만 오랜만에 종묘를 걸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2. 그런 사람

갓 30대가 되었을 때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언젠가 ‘특별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던 것 같다. 인터넷으로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삶을 보면서 사실은 우리 모두가 사는 삶은 그저 한 끗 차이일 뿐이라고.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는 부르는 말이 없어 부를 수 없었던 ‘인플루언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지칭했던 것 같다. 좋은 것을 더 좋게 소개하고, 가진 것을 더 많이 선보이는 그런 삶을 사는 그런 사람들.


그저 모든 것에 시들해져 늘 좋아하는 카페의 구석에 앉아 늘 같은 메뉴를 마시는 나는. 비슷한 종류의 음악과 책을 접하며 늘 비슷한 영화를 골라 본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더 좋게 소개하고, 가진 것을 더 많이 드러내어 보여준다. 그럼 사실 나 일상의 인플루언서인 건가.


3. 캠핑 의자

8월 말부터 시작할 부모님의 제주 한 달 살기 첫 번째 준비물인 캠핑 의자를 샀다. 너무 싼 걸 사면 금방 못 쓰게 된다고 단단한 놈으로 사라던 아빠는 캠핑 의자에 쥐꼬리만 한 예산을 책정해줬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바다 노을을 보는 상상을 한다. 아빠는 그저 올레길과 한라산 그리고 갈치 잡이 배에 올라 낚시하는 상상을 한다. 남편은 의자를 펴고 마당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상상을 하고, 엄마는 의자를 사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동상이몽 제주 살이.


이쯤 되면 코로나 덕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우리 가족은 지난 몇 달간 꽤 자주 만났다. 복작거리며 한 집에서 밥을 지어먹고 숟가락이 몇 벌인 지 언제 이불을 바꿨는지 같은 하릴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코로나 덕에 우리 부부는 미국 여행과 여름휴가 계획을 모두 취소했고, 부모님은 오랜 기간 준비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취소했다. 그 덕이 우리는 제주에 간다. 그때까지 부디 무탈하기를 모두에게 평화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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