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Jul 20. 2020

7월 20일 월요일

소파에 누워서 쓰는 글.

1. 공무원 시험

대학 동기인 친구 J는 2년 차 공시생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직업을 정하고 차곡차곡 경력을 쌓더니 어느 찰나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뒀다.


외국어 전공에 해외 유학도 두 차례나 다녀온 수재였던 친구마저 잘 나가는 회사를 뒤로한 채 노량진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면서 누구나 마음 한편엔 ‘평생직장’을 꿈꾸는 걸까 하고.


내 주변 공시생 중 가장 멋진 내 친구는 틈틈이 방탄소년단 포스터를 모으고 세련된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직구한다. 트렌디한 갈색 립스틱을 마스크 아래 고이 바르고 손가락 열 개에 돌아가면서 예쁜 반지를 끼는 애. 올해는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공무원 되면 맛있는 거 사라.


2. 여름의 백합

봄의 꽃시장은 작약이 풍년이다. 꽃시장에 가는 날엔 언제나 각기 다른 결의 분홍빛 작약을 사모아 일주일 내내 동그란 봉오리를 관찰하는 기쁨으로 지난 계절을 보냈다. 밤 사이 서늘한 베란다에서 오므라진 꽃을 바라보고 아침 햇살에 다시 틔우는 일상. 집 어딘가에 꽃이 있다는 건 그런 설렘이 있었다.


오랜만에 꽃 수업을 다녀온 지난주. 작은 꽃다발을 풀어 꽃병에 가지런히 꽂아두고 내내 꽃들을 바라보았다. 여름 수국의 싱싱함이 멋졌고 이젠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다는 튤립의 색감도 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단연 여름의 백합이었다. 밤 사이 뿜어낸 아찔한 향이 거실을 메우는 아침. 뭔가 찐득찐득하면서도 오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되게 멋진 재즈바에서 정신없이 술 마시다가 부지불식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 몽롱한 향기.


3. 요가

요가를 시작한 첫 시점을 따라 가보면 2008년 북경까지 거슬러가게 된다. 또래의 중국 학생 중 고작 3명뿐이었던 한국 유학생. 딱히 선생님의 설명을 알아들었다고 하기엔 옆 사람 동작을 모사하는 데 급급했단 기억. 요가하고 시내에 나가 피자를 사 먹거나 놀기 바빴지만 인생 첫 운동의 효과였던 지 생각보다 다이어트 효과도 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도 한 번 씩 요가를 수련했다. 주로 헬스장에서 하는 보너스 요가이거나 퇴근 후 스트레칭 위주의 요가였지만 나에게 가장 익숙했던 운동이었다.


어느샌가 운동을 해야 하는 체력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돌아갔던 운동도 바로 요가였다. 요가는 몸과 그에 연결되는 마음을 모두 수련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마도 첫 수련에서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였던 것 같다.


얼마 전 마음이 궁핍했던 날, 하지만 유난히도 햇살이 좋았던 날, 멋진 곳에서 요가를 했다. 두통을 유발해 자주 하지 않았던 태양 경배 자세 (수리야나마스카라) 를 여러 번 반복하는 90분 간의 수련을 마치고 아주 오랜만에 길고 깊은 잠을 잤다. 꽤 고요한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7월 13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