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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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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13. 2020

7월 13일 월요일

망원동 스몰커피에 앉아 쓰는 글.

1. 미용실 이야기

두 계절을 넘기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서울로 이사하고 몇 년 동안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못 골라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어쩜 미용실 하나를 못 골라 몇 년을 고생했는지. 따지고 보면 여전히 안과를 못 골라 봄마다 알레르기를 끌어안고 지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네.


머리숱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머리숱을 자랑하는 나에게 미용실이란 언제나 그 숱을 감당해줄 친절하고 (또 나를 이해해 줄 머리숱이 많은) 미용사가 있어야 했다. 거기에 많은 숱을 적게 보이게 해 줄 쿨한 숱 치기와 층 치기가 더 해지면 금상첨화. 그런 의미에서 망원동 모꼬지방은 완벽한 선택이었다. 지난봄 즈음 짧은 숏컷을 하고 깨달았다. 여기라고. 파마를 마음먹고 갔다가도 언제나 마음에 드는 커트 덕에 몇 번이나 커트만 하고 돌아 나오게 되는, 코로나 시대에도 안전한 1인 미용실.


2. 비 오는 월요일

휴직을 시작하고 비 오는 날을 세고 있다. 봄에는 그토록 비가 안 내리더니 여름이 시작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비가 대차게 내린다.


비가 오는 날은 기분이 째진다. 어떤 일을 해도 두 배는 더 즐겁다. 빗소리에 어우러지지 않는 음악은 없고 인센스 향도 한결 짙어진다. 아파트 앞 놀이터에 아이들 소리가 걷히고 그저 빗소리만 시원하게 들리는 날. 마음의 안정은 절로 따라온다.


3. 마젤토브

종종 이렇게 마음이 풍요로운 날이면 그동안의 불안정했던 나의 기록을 돌이켜본다. 어떤 찰나에 내가 상처를 받았었는지 어떤 날에 내가 무너졌었는지. 소상히 읽어보고 다시금 그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주로 내가 지지받지 못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들이 소란 속의 소외일 때도 고요 속의 외침일 때도 있다. 최근엔 전자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암묵적으로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마음이 풀어진다. 상처를 받는 날도 무너지는 날도 그렇게 풀어지도록 두면 좋을 텐데. 주로 그러지 못했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나오는 ‘제국의 아이들 - 마젤토브’ 노래에 기분의 정점을 찍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기계음과 어이없는 가사를 들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다음번 우울한 날엔 마젤토브를 들어야지.


4. 오늘의 장소 - 망원동 스몰커피

처음 스몰커피에 갔던 날은 2년 전 2월 28일이었다.


한창 일이 바빴을 때라 주말에도 출장을 다녀왔고 다음 날이었던 삼일절에도 당일 출장을 가야 했다. 그럼에도 일은 무심히도 잘 풀리지 않아 달갑지 않은 피드백이 꼬리표처럼 나를 괴롭히던 날들. 결론적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날들.


그 날 이후 기회가 닿지 않아 가지 못했던 스몰커피는 그간 조금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했다. 여전히 귀여운 원두 패키지에 미소 지었고 공간 가득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에 오랜만에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다.


2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사뭇 달랐지만 여전히 아카시아 꿀 라테는 맛있었다. 다시 다녀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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