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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31. 2020

8월 31일 월요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쓰는 일기

1. 여름휴가

지난 일주일 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제주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심심하지만 따분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심신 에너지가 풀충전 되는 시간이었다.


부모님의 무조건적 지지와 위안을 받은 일주일. 어느 때보다 비일상적인 일주일이었지만 마음만은 가장 일상에 가까운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족과 휴식이란 그런 것.


2. 가을

나는 여름과 가을의 중간을 좋아한다. 여전히 더운 한낮의 태양과 저녁의 건조한 바람이 좋다.


그 명목으로 매 년 가을엔 장바구니가 넘쳐난다. 깔끔한 플랫슈즈나 진주 목걸이. 몇 벌이나 있는 흰 셔츠나 청바지도 새로 사고 싶고 가디건이나 스카프도 사고 싶다. 물론 나갈 곳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샀겠지만 회사마저 안 나가는 이 계절에 저것들을 살 명분이 없다. 분하다.


3. 아무래도 좋은 사람

몇 년 전쯤 읽었던 책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라는 책 속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는 챕터를 좋아한다.


떡을 만드는 순서나 랩을 자르는 크기 같이 딱히 중요하지 않는 기준에 대해서 유난히 소란을 떠는 ‘사사코’ 씨와 거리를 두는 대신 작가 본인에게 중요한 사건이 아닌 경우 그 일이 지나갈 때까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챕터였다.


우유부단하다고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게 좋다. 그리고 나는 ‘아무래도 좋은’ 유연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4. 폴 고갱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의 점심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다 매뉴팩트에 다녀왔다. 운전을 조금만 잘했어도 매뉴팩트 쯤이야 내가 차를 몰고 다녀오는 건데 언제나 아쉽지만 별도리가 없으므로.


정부 방침에 따라 TO GO만 가능하다는 안내와 개인정보를 영수증 아래 적어서 내야 하는 몇 단계를 거치고 매뉴팩트에 들어섰다. 커피를 주문하고 집에서 플랫화이트를 만들어 먹을 작정으로 폴 고갱 콜드 브루 한 병을 사고 구석에 서서 커피를 기다렸다. 콜드 브루 쇼케이스에 늘 가득 차 있던 콜드브루가 5병도 채 남지 않았다. 모두 집에서 커피를 마시느라 그런 건가 싶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들러 하릴없이 커피를 마시고 허송세월을 보냈던 좋아하는 곳에 손님도 없이 테이블만 덜렁 있는 모습을 보니 어서 아무 걱정 없는 미래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한 달에 한 번 같이 술을 마시는 ‘부부 음주의 날’과 지난 2번의 크리스마스 디너를 보낸 망원동 PERS Midnight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른들을 위한 미드나잇 카페. 망원동에서 보기 드문 말 그대로 팬시한 다이닝 룸이었는데 너무 아쉽다. 좋아하는 곳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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