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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08. 2020

9월 7일 월요일

가을 가을 오 가을.

1. 가을 아침

몇 년 전 아이유의 가을 아침이라는 노래가 발표되었을 때가 또렷이 생각난다. 물론 아이유에 대한 팬심 때문이기도 하고 오전 7시에 첫 발매된 따끈따끈한 앨범을 출근송으로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

/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


태풍이 여러 개 지나면서 비가 아주 많이 내리고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그 사이 계절도 바뀌었다. 아침엔 발끝이 시리고 청바지를 꺼내 입고 싶은 심리가 굴뚝같이 간절해진 것을 보면 정말 가을이 온 것 같다. 가을이라니.


2. 커피

모든 회사가 재택근무를 시도하고 시작하던 지난봄에도 꿋꿋이 왕복 2시간의 통근길에 오르던 남편의 재택근무가 마침내 시작됐다.


남편의 재택근무에 신난 건 나 하나라는 남편의 말이 딱 맞다. 매 끼니를 함께 챙겨 먹고 집안일은 내가 하네 네가 하네 투닥거리기는 해도 전례 없는 기간 동안 아프지 않고 서로의 동선을 간섭하며 지내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하루에 두 번 커피를 마시고 5천 보도 못 채우는 짧은 산책에도 매일 밤 깊고 긴 잠에 든다. 심신의 안정. 남편 덕후.


3. 작별

지난주 망원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다이너 펄스 (Pers midnight)에 다녀왔다. 첫 오픈 소식을 우연찮게 듣고 그 이후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곳. 밤에만 여는 식당 겸 카페 이지만 곳곳에 사장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가구와 조명에 언제나 마음을 빼앗겼다. 커트러리와 식기류도 멋졌다.


영업 전 날카롭게 깎아 서랍에 넣어 둔 연필을 손에 쥐고 메모장에 그 날의 일기를 짤막하게 적어두면 종종 SNS로 그것을 복기하여 주기도 했다. 라디오에 사연 보내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몇 번이나 그걸 기다린 적도 있었다.


매끄럽고 우아하게 떨어지는 키무라 글라스의 와인잔에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스테이크를 썰어 먹으며 그곳이 오래오래 있어주기를 바랐다. 좋아하는 곳들이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그것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그 인연이 닿는 곳까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식사를 마쳤다. 거의 한 달만의 외식, 코로나 시대의 큰 호사.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작별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코로나라서 덜 아쉽게 작별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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