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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4. 2020

8월 24일 월요일

오전 5시 불면 중에 쓰는 일기.

1. 악몽

불면이 시작되면서 종종 꾸던 악몽도 사라졌다. 은근 예민한 성격이라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들은 백이면 백 꿈에 나왔다.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땐 안타깝게도 회사 책상에 앉아서 어려운 상사가 다그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출장 가는 비행기가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던 어제 악몽을 꿨다. 악몽이라고 하기엔 개꿈에 가까웠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뒷목이 뻣뻣했다. 불면과 악몽의 사이에서 숙면 레이스를 열심히 달리는 이상한 일상.


악몽의 내용은 코로나 시대로 하늘길이 뚝 끊긴 와중에 마지막 비행기로 북경에 입국해서 생긴 에피소드. 꿈속의 나는 집도 없고 짐도 없어 친구의 단칸방 고시원에 얹혀 지냈고, 그마저도 불편한 회사 동료가 시비를 걸어 나와야 하는 꿈이었다. 게다가 서울로 돌아오면 교도소 같은 시설 격리를 겪어야 해서 진퇴양난이었던 개꿈 중의 개꿈.


얼마 전 사뭇 진지하게 자가격리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는 데 그게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야 하는 고민이 투영된 것 같기도 하다. 여러모로 기가 막히는 불쾌함이었다.


2. 33년

아빠의 정년 퇴임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빠는 회사원이었으니까 최소 33년 차.


아빠를 따라 울산에서 수원으로 이사 왔던 날. 엄마는 울산에서부터 냉장고 앞에 새 집 주소를 붙여놓고 외우라고 했다. 사투리도 쓰면 안 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억수로. 언니야. 오빠야” 는 절대 안 된다고 여러 번 알려줬다.


밤늦게 자주색 엘란트라에서 내려서 마주했던 수원에서의 첫 집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울산의 크고 깨끗한 아파트에서 수원의 아주 작고 오래된 집으로 온 이사. 알고 보니 엄마도 그 집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그렇게 수원에서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다. 아빠의 근속 덕분에 고향 같은 동네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 학교를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와 결혼도 했다. 작은 하루들이 모여 일 년을 만들고 그게 쌓여 33년이 되었겠지.


아빠는 작년부터 퇴직을 준비했다. 어떤 날엔 후련해 보였고 또 어떤 날엔 우울해 보였다. 장기 휴가를 계획하다가도 문득 말을 줄이고 숙소를 물렸고, 갑자기 러시아나 라오스 같은 나라 이름을 대면서 가족 여행을 가야겠다고 하기도 했다. 33년 근속과 퇴직. 아빠의 어떤 세상이 끝나간다.


3. 요가

한 달 전쯤 요가를 새로 등록했다. 아무렴 모두에게 각자의 수련이 있다고 하지만 집에서 영상을 보며 내 수련을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마침 예전에 다니던 요가원의 선생님께서 가까운 요가원에도 나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지체 없이 요가원을 결정했다.


아침마다 겨우 일어나 요가원에 간다. 그리고 좋아하는 자리에 요가 매트를 깔고 앉으면 마스크를 쓰고도 꽤 가뿐한 기분이 든다.


예전보다 훨씬 넓어진 수련 반경은 지난 반년간 해 온 개인 수련의 덕인 것 같다. 매번 두통이 동반되어 꺼려했던 ‘수리야 나마 스카라 (태양 경배 자세)’ 두 개의 시퀀스 모두 내 호흡에 맞춰 수련을 한다. 멈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제는 코어 힘을 사용해 시퀀스 사이사이 끊김이 없이 부드럽게 잇는 연습을 하고 있다.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 (플랭크와 팔 굽혀 펴기의 중간 자세)’를 할 때 무릎 지탱 없이 내려가 본다던가, 혹은 무릎 지탱 시에도 상체를 일자로 내려가게 하는 연습을 한다. 또 업독 자세에서 발 윗등을 그대로 쓸어 다운독 자세로 넘어가는 연습도.


요가를 하는 동안 온몸의 피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빠르게 돈다. 소화도 잘 되고 머릿속 생각들도 정리된다.


부모님과 짧은 여행을 오면서 아빠가 사용하시는 요가매트를 부탁했다. 어디서나 언제나 각자의 수련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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