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Nov 02. 2020

11월 2일 월요일

맨발이 추워진 늦가을의 월요일

1. 크러쉬

얼마 전 발매된 크러쉬의 신보를 열심히 듣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전에 발매된 크러쉬 노래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 수록곡들 모두가 참 좋다. 이전에 비해 좋은 건지 원래 이렇게 좋은 건지 비교하기 어렵지만 참 좋다.


모든 곡을 1번에서 끝번까지 듣다보면 어느샌가 수록곡들 사이의 이음새마저 귀 기울여 듣게 되는데, 이번 앨범의 매무새는 상당하다. 특히 3번 곡인 ‘춤 (feat. 이소라)’ 에서 4번 곡인 ‘Step by Step (feat. 윤미래)로 넘어갈 때 같은 곡이 의도적인 공백 후 이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지다. 여러 번 들어봐도 여전히 한 곡 같은 느낌이라 몇 번이나 다시 들을 정도로.


게다가 앨범 자켓이 곡선이 두드러지는 어떤 이의 옆모습 실루엣이라 언뜻 보고 Tom misch 앨범인 줄 알았는데 앨범 제목이 With Her, 모든 곡이 여성 보컬들과 함께한 노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일관성에 탄복했다. 와 정말 대단한 가수구나. 즐겁게 잘 듣겠습니다. 크러쉬 짱!


2. 집

지난 연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한 후 오래지 않아 코로나가 시작됐고 그 덕에 집의 면면을 매일같이 발견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구를 옮겨가며 해가 더 잘 드는 곳에 빨래를 널고 온 집을 쓸고 닦으며 단정한 일상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첫 집이었던 연남동 원룸은 부모님이 독립을 허락한 그 날부터 빠르게 집을 정해야 했기 때문에 그저 깨끗하고 안전한 신축 건물에 홀려 계약을 진행했다. 그다음 두 번째 집이자 나의 신혼집이었던 연남동 집은 환기도 잘 안 되고 햇살도 잘 들지 않았지만 그저 믿음직한 집주인 아저씨 덕에 큰 문제없이 잘 살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음으로 보러 왔던 어느 저녁, 집을 채우고 있는 엄청난 살림과 온 창문을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 때문에 집의 모습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남향이라고 여러 번 말해주는 부동산 아줌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맑은 날 다시 와서 보니 생각보다 밝았던 베란다와 생각보다 넓어 보이는 공간을 보고 계약했다.


이 집에서 사계절을 다 보내고 나니 오후 3시가 넘도록 따뜻한 안방과 거실이 얼마나 감사한 지. 이상한 구조 덕에 더욱더 완벽하게 나뉜 각 공간의 구획 덕에 나는 집에 있는 내내 따뜻한 공간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집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휴직의 기쁨과 슬픔을 누리게 될 줄 몰랐는데 이사 오기 참 잘했다.


3. 마음에 보푸라기 난 기분

몇 년 전부터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적어 둔 일기를 들춰보면 ‘마음에 보푸라기 난 기분’이라고 적혀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혹은 기분 좋은 하지만 번거로운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든다. 휴직에서 복직으로 바뀔 때 그리고 복직에서 휴직으로 바뀔 때도.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고 이리저리 뒤척거릴 때도 종종 그런 기분이 든다.


옷에 난 보푸라기야 그저 떼어내면 그만이지만 기분 속에 난 보푸라기는 뗄 순 없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 같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4. 비로소

비로소 휴직 같은 하루를 보냈다. 집에서 이른 점심을 차려 먹고 설거지에 청소를 간단히 마치고 나왔다. 읽다 만 책과 다이어리 두 권 (2020, 2021) 그리고 펜 몇 자루를 들고 나왔다.


어제는 비가 왔고 오늘은 날이 맑아 어디든 걸어보려 했지만 맨발로 나오니 조금 추워 이윽고 커피숍을 찾아 들어왔다. 대학가의 커피숍은 늘 붐비고 소란스럽지만 자연스럽게 바쁜 척을 할 수 있어 좋다. 들고 왔던 ‘아무튼, 요가’를 다 읽고 나니 지금 앉은자리에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올해와 내년의 몰스킨을 함께 펼쳐 가족의 대소사를 옮겨 적었다. 별 일 아니지만 언제나 미루게 되는 일이라 생각난 김에 음력 생일까지 모두 정리해서 적었다. 핫초코 한 잔에 조각 파운드를 야무지게 먹고 마지막으로 월요 일기를 쓴다. 비로소 휴가 같은 또 한 번의 월요일을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월 26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