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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09. 2020

11월 9일 월요일

커피 혹은 커피숍에 대한 관찰

1. 커피를 마셨다

오후 3시 반 짧은 등산을 마치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오랜만에 맞이한 불면의 밤. 동물농장 영상도 여러 개 돌려보고 내적 물욕에 맞서 쇼핑도 몇 시간 했지만 결국 침대를 다시금 박차고 나와 글을 쓴다. 이쯤 되면 커피 혹은 커피숍에 대한 글을 한 번쯤 남길 법도 한 것 같아 적어보는 새벽 4시의 야심한 월요일기.


2. 커피에 대하여

대학교 1학년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물론 썼고 맛이 없었다. 그땐 차라리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맛이 없었다.


대학교 졸업반 즈음 커피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따뜻한 오늘의 커피 숏 사이즈. 양도 적당하고 아이스보다 목 넘김도 훨씬 편했다. 1분 1초가 모자란 아침에 부지런을 떨어 그 커피를 쟁취하고 뭐랄까 꽤 잘 살고 있다는 귀여운 허세가 느껴질 정도로 참 그 메뉴를 좋아했다.


우유가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는 나에게 돌파구이자 구원처럼 등장한 커피가 있었으니 바로 ‘플랫화이트’. 라떼를 마시자니 우유 양이 상당해 부담이었고 에스프레소에 우유 소량인 코르타도를 마시자니 아직은 어려웠던 나에게 매뉴팩트 플랫화이트는 커피의 신세계를 열어줬다.


매뉴팩트에서 플랫화이트 한 길을 판 지 어언 4년. 이제는 조금 커피에 입이 트였는지 여름엔 산미가 높은 청량한 커피를 골라 마실 수 있을 만큼 꽤 근사한 입맛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유명하다는 커피숍의 메인 메뉴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커피숍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


3. 커피숍에 대한 탐구와 관찰

매뉴팩트 커피

매뉴팩트 커피 연희 본점

가장 좋아하는 커피숍. 연희와 방배에 매장이 있고 파주공장을 운영한다고 들었다. 연희 본점의 경우 평일 점심엔 매우 붐비고 건물 1층에 베이글 집이 들어오면서 주말 오전도 이제 더 이상 고요하지 않다. 홀이 아주 좁고 주로 주문받은 바리스타가 커피를 가져다주는 시스템. 예전엔 구석에서 책도 읽고 급하면 노트북을 펼치기도 했는데 요즘은 여의치 않다. 그저 커피를 위한 공간이지만 좋다.


10번 중 7번은 아이스 플랫화이트를 마실 만큼 좋아한다. 병으로 포장된 콜드브류도 꽤 여러 종류를 판매하고 있어 회사 연말 회식 선물로 사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맛있다고 하셔서 몇 번 더 사다 드린 적이 있다. 주로 마시는 건 폴 고갱. 샌프란시스코도 있으면 마시는 편이지만 그 외 나머지는 즐겨 찾진 않는다. 아! 올여름에 마셨던 산미 좋은 브룬디루몽게도 꽤 맛있게 먹었다.


앤트러사이트

앤트러사이트 연희점

매뉴팩트 다음으로 자주 가는 곳은 앤트러사이트. 서울에는 연희, 서교, 한남에 지점을 가지고 있고 제주 서쪽 한림에 또 하나의 지점이 있다. 주로 가는 곳은 역시 연희점.


연희점은 가로로 아주 긴 의자와 아주 긴 테이블이 있어 매뉴팩트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러야 할 때 주로 간다. 다만 책을 읽기엔 아주 어두우리만큼 자연광 위주의 공간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 작업을 한다. 주로 마시는 건 나쓰메 소세키. 약간의 산미와 고소함이 어우러져 가장 안정적이게 맛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매우 사적임)


최근엔 베이커리도 먹어봤는데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소보로가 올려진 라즈베리 마들렌 하나 먹고 또 사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네 최고. 아메리카노를 제외한 다른 커피 메뉴도 마셔봤지만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 곳에 갈 때는 나쓰메 소세키로 직진하는 타입. 원두와 브루잉 커피의 이름이 꽤 시적이다.


테일러 커피

테일러 커피 크림모카

홍대와 연남 일대를 꽉 잡고 있는 테일러 커피. 찬바람이 불면 언제나 달려가 크림 모카를 마셨다. FW 시즌의 첫 크림 모카라면서.


얼마 전 신사점에 갔다가 마포 감성과 차원이 다른 강남 감성에 반해 여러 실험적인 메뉴를 마셨지만 막상 가장 즐겨 마시는 건 크림 모카가 되겠다. 요즘은 처음만큼 감동이 크지 않은데 (아마도 메뉴의 희소성이 많이 떨어져서) 예전엔 크림을 몽글하게 쳐서 커피 위로 올려주던 크림 모카의 신선함과 촉촉함이 예술이었다.


로우키 커피

동네 친구가 성수동으로 이사 가면서 그곳의 여러 커피숍을 선보여줬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곳은 로우키 커피, 라떼가 아주 맛있다. 로우키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사실 두어 달에 한 번씩 작곡가 작사가 부부가 꾸리는 ‘로우키 뮤직 블렌드’. 집에서 종종 틀어두고 집안일을 하다가도 문득 이렇게 좋은 노래들이 세상에 나와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 이쯤 되니 나는 커피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커피숍에 대한 관찰이 주를 이룬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군.


카멜 커피

카멜 커피 판교현대백화점

카멜 커피의 대표인 미스터 카멜의 인기와 도산공원 신규 지점 도출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카멜 커피. 여기도 마찬가지로 성수점을 먼저 가봤고 성수점이 가장 좋았다. 성수 특유의 공장형 감성과 카멜의 브랜딩이 톤앤톤으로 찰떡궁합. 꼭 한 번 카멜 커피를 갈 계획이라면 성수점을 추천한다. 인기 메뉴인 카멜 커피 (부드러운 플랫화이트) 와 앙버터만 줄기차게 먹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마일스톤 커피

마일스톤 커피 신사점

최근 마신 커피 중 가장 맛있게 마신 커피이자 디저트는 신사동 마일스톤 커피였다. 플랫화이트와 티라미수의 조합 최소 척척박사 수준. 과거 테일러 커피의 크림 모카와 같이 직접 손으로 쳐서 바로 커피 위에 올려주는 아인슈페너가 가장 인기 있다고. 그 크림이 고스란히 올라간 티라미수를 맛 보니 다음엔 꼭 아인슈페너를 마셔봐야 할 것 같다. 펫 프렌들리 커피숍이라 평일 저녁에도 강아지가 의자에 다소곳하게 앉아 밤 커피를 즐겼다.


위에 나열한 커피숍 외에도 좋아하는 곳으로 망원동의 스몰 커피, 커피로 유명할 만했던 알레그리아 그리고 프렌치토스트가 맛있는 연희동 비하인드 리메인이나 벚꽃 피는 계절에 갔던 듁스 커피 등 여러 곳이 있다. 제주도에는 언제나 마음이 애닳는 풍림다방도 있고. 그저 소상히 써내려 가기에 상대적으로 적었던 방문과 찰나 같은 기억들 뿐이라 나열하지 못한 것뿐 모두가 너무도 좋았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커피는 많다. 오전에 마시는 커피는 갈증을 해소하고 오후에 마시는 커피는 오늘처럼 긴 밤을 열어 결국 이런 엄청난 감상문을 쓰게 만들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커피가 나를 기다린다!



알레그리아 커피 덕수궁점
제주도 풍림다방
비하인드리메인 연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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