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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17. 2020

11월 16일 월요일

매거진 적 허용에 따른 '월요일기'

1. 휴직과 휴직과 휴직

나는 3번째 휴직 중이다. 3번째라고 적고 보니 말 못 할 사정으로 자주 오래 쉬어버린 것 같지만 이례적으로 전 세계가 멈췄고 그 사이 우리 회사도 나의 업무도 멈춰버렸다. 그렇게 올해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세 달까지 쉬다 보니 어느덧 3번째 휴직을 맞이했다.


회사원이 되고 처음 ‘휴직’이라는 제도를 들었을 때 느껴졌던 묘한 패배감을 기억한다. 휴가도 아니고 휴직 이라니. 일 년에 15일 정도 나오는 휴가를 평일과 휴일 사이 똘똘하게 잘 배치하면 1달을 꼬박 쉴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직을 사용해야 하는 사연을 철없게 궁금해한 적도 있었다.


어느덧 7년 차 회사원, 이제는 ‘휴직’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해방감을 마주한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보니 원하던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혹은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다양한 삶을 위해 휴직을 사용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휴직은 유쾌한 것도 그렇다고 그 반대도 아닌 그저 제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예상치 못하게 그 제도를 알뜰살뜰하게 사용하고 있고.


나의 휴직은 방학에 가깝다. 일을 하다가 멈췄다가 다시 하기를 반복한다. 그저 방학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2. 이적

엊그제 발매된 이적의 신보를 듣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민들레, 민들레’와 ‘숫자’. ‘민들레, 민들레’의 세련된 리듬감과 ‘숫자’의 간지러운 이별 가사가 좋았다. 물론 두 번째 패닉 그리고 왼손잡이라고 불리는 ‘돌팔매’ 도 좋다. 그러니까 이번 신보 다 좋다는 이야기를 풀어서 점잖게 하고 있는 거예요.


수년 전 비 내리던 올림픽공원 광장에서 “비가 많이 내리네요.”라는 말과 함께 흘러나오던 이적의 Rain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이적의 노래를 들어왔다.


한 줄의 글로 적어두니 그때의 장면이 꽤 낭만적인 것 같지만 사실 그 날 비가 엄청 많이 왔다. 모두가 판초 우의를 입고 무대를 기다려야 할 만큼 아주 많이. 무대 장비들 위에 비닐이 여러 겹 덮여 있었지만 공연 마지막 날 마지막 헤드라이너의 마지막 곡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잔디광장에 들어 찬 비에도 모두가 비를 온몸으로 맞아냈던 야심한 저녁이었다.


그럼에도 마치 비가 안 보이는 것처럼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멋졌다. 실제로 그 날 꽤 많은 야외무대가 취소돼버렸기 때문에 더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도록 들어도 노래가 가지고 있는 계절감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3.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

얼마 전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


옛 회사에는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어린 여직원이 있었다고 했다. 주로 상업고등학교 출신이지만 각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회사에 들어왔던 모범적인 어린 직원들. 어린 직원들의 용모와 회사생활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둔 것 같았던 삼토반은 개연성 있는 탄탄한 스토리와 각 주연 배우들이 표현한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모두 좋았다.


고아성 배우가 연기한 회사원의 오지랖, 박혜수 배우가 표현한 그 이면의 순수함 그리고 이솜 배우의 상처 받은 하지만 시크한 내부고발자 연기도 좋았고 이주영 배우의 90년대 산 증인 수준의 헤어스타일도 멋졌다. 멋진 캐릭터를 이어주는 불합리한 에피소드들에 불같이 화가 났다가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처음 회사를 경험했던 2011년 그 많던 어린 직원들은 이미 존재를 감춘 후였다. 다만 탕비실 챙기기나 손님맞이하기 등과 같은 관습적인 업무들은 남아있었다. 그때만 해도 어린 막내 직원이 싹싹하게 나서서 해야 하는 일로 여겨졌고 그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10년 정도의 기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회사에는 관습적인 업무들이 남아있다. 여전히 꾸준히 아직도. 때로는 고도의 심리전과 더 못된 심보들이 덕지덕지 붙어 오히려 더 부조리한 ‘미스 김’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도 꽤 많이 바뀌었겠지. 아니 바뀌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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