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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30. 2020

11월 30일 월요일

복직을 하루 앞둔 월요일의 일기

1. 반찬 가게

나는 불도 칼도 무서워하는 전형적인 요알못 (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독립을 하고서도 줄곧 카레나 잔치 국수 같이 빨리 해 먹을 수 있는 한 그릇 음식을 주로 먹었다. 엄마가 한 상 가득 작은 접시마다 반찬을 내어 주는 게 얼마나 고되고 번거로운 일이었을지는 결혼을 하고서야 겨우 알아차렸다.


결혼 초기 남편이 이직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낮 동안 요리 학원을 다녔다. 어느 날의 저녁에는 랍스터 구이가 올라올 정도로 남편의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렇게 요리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생겼다.


몇 달 전 연희동 골목을 걷다가 반찬 가게를 발견했다. 아주 깔끔하고 정갈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였다. 계란말이부터 작게 포장된 국과 각종 반찬까지 없는 게 없었다. 반찬 몇 가지에 나물까지 두어 종류를 사도 만 원 정도여서 한 끼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나는 쌀을 깨끗이 씻고 잡곡을 잘 불려 맛있는 밥만 지으면 됐다.


나는 이제 다시 복직을 준비하고 남편은 집에 남아 재택을 한다. 반찬 가게의 손을 빌리고 남편의 여전한 요리 사랑에 힘입어 나는 요리에서 멀어지고 식탁에서 가까워지는 연말을 보내겠지. 미리 감사합니다.


2. 산책

오랜만에 긴 산책을 했다. 연희동 매뉴팩트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테이크 아웃하고 경의선 숲길을 따라 공덕까지 걸었다. 올 한 해 가장 많이 한 일을 꼬닥꼬닥 세어보면 아마 넷플릭스만큼이나 산책의 비중이 아주 클 것 같다.


선유도 공원을 지나 당산역까지 크게 한 바퀴 걷는 한 시간 정도의 산책 코스를 좋아한다. 선유도 공원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기도 하고 주말엔 가족 단위로 모인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당산역에서 한강공원을 한참 따라 올라가 여의도까지 걷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산책 코스도 꽤 괜찮다. 국회의사당을 지나면 나타나는 엄청난 인파에 매번 놀라긴 하지만 한강을 따라 길게 걷고 싶은 날의 산책 욕구를 채워준다.


산책이 어려운 날씨에는 아파트 단지를 두세 바퀴 걷는다.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코스지만 걸음이 주는 환기는 대단하다. 걷는 것마저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으니까.


3. be festive

10년 전쯤 미국에서 잠깐 어학연수를 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뉴욕을 곁에 둔 덕에 아주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뉴저지와 뉴욕을 잇는 링컨 터널을 지나면 신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42번가 근처의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타임스퀘어를 가로질러 교회를 가고 그 길로 NYU가 있는 워싱턴 스퀘어까지 1시간이 넘게 걷기도 했다.


10월 말 할로윈이 끝나자마자 모든 집 앞의 호박이 금세 크리스마스트리로 바뀌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스타벅스가 11월 1일이면 매년 겨울의 빨간 컵을 내놓는 것처럼 미국의 11월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기다리는 축제의 서막 같았다.


미국에 머물던 해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고 랭귀지 스쿨의 모든 학생들이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해의 타임스퀘어 볼 드롭 행사에는 싸이와 무한도전 멤버들이 등장하기도 했었으니 그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몇 년 전 사 두었던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여전히 꺼내지 못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11월이면 트리를 꺼내고 집안 곳곳의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어 잘 보이는 곳에 두곤 했었는데 올해는 조금 늦었다.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모두에게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던 올해.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든 일상이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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