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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29. 2021

3월 29일 월요일

좋아하는 숫자가 모여있는 월요일의 일기 (3월 30일인줄 알았네)

1. 미세먼지가 기승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재난문자가 왔다. 오늘은 황사경보. 이미 하루에도 열 번은 울리는 재난경보에 피로감이 얼마나 큰 지 이제는 진동이 여러 차례 울려도 그러려니 라는 마음으로 비자발적인 안내를 받곤 한다. 물론 봄이 왔고 벚꽃도 후두러지게 피고 있으니 황사는 절로 따라오는 거라지만 오랜만에 회색 미세먼지를 보니 눈이 아팠다. 벚꽃 구경은 둘째치고 하늘 구경도 못하고 지나가는 3월 30일.


2. 도돌이표

인수인계. 업무적응. 바쁨. 마무리.


도돌이표 같은 또 한 번의 복직을 마치고 다시 휴직을 맞이한다. 매 달 마지막 주 메일함을 샅샅이 뒤져 아주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꼼꼼히 인수인계를 한다. 휴직에 다녀오면 또 누군가의 수첩에 빼곡히 적힌 일들을 순서대로 전달받고 이윽고 다시 전달하는 도돌이표 같은 나날들. 휴직과 복직이 괴로운 시기를 넘어서고 나니 휴직을 기다리고 복직을 덤덤하게 맞이하는 적응의 시기에 들어섰다.


첫 휴직을 마치며 나는 어딘가에 ‘세련되게 보내지 못한 휴직’을 아쉬워하며 일기를 적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나는 아주 ‘세련된 휴직’을 보내고 있음에도 조금 더 멋진 일을 기다리며 4월을 보내보려고 한다. 즐겁고 유쾌하게.


3. 치킨이 먹고 싶어서

어제저녁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후 내내 무엇을 했는지 저녁엔 뭘 할 예정인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엄마는 종종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오늘 하루 계획에 대해 완곡하지만 직접적으로 묻곤 했다. 언제 일어났는지 점심엔 뭘 먹고 싶은지 같은 질문을 하고는 마지막엔 “그래서 지금 엄마가 가고 있는데.”라는 말을 꺼내곤 했다. 그렇게 엄마는 계절에 한 번씩 냄비째 된장국을 끓여서 이고 지고 우리 집에 왔다. 냉장고에 반찬과 국을 잔뜩 집어넣고는 정작 핸드백에서 백화점 상품권을 잔뜩 꺼내서는 쇼핑을 가야겠다며 길을 나서곤 했다. 엄마는 즉흥적이면서도 새벽형 인간이기 때문에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쇼핑을 시작하기도 했다. 쇼핑을 하고 밥도 사 먹고 나면 엄마는 집으로 갔다. 홀연히 아침을 깨우고 사라지곤 했다.


주로 아침에 전화를 걸던 엄마가 어느 날엔가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배가 너무 고픈 채 장을 봤더니 너무 많이 봤노라고 치킨에 초밥에 연어에 고기까지 잔뜩 사 왔더니 엄두가 안 난다고 집에 와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었다. 그 길로 마트에서 산 저녁거리를 그대로 싣고 엄마 집에서 도란도란 저녁을 먹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결국 그 날 산 나물 반찬은 쉬어서 버렸지만 저녁거리의 2배도 넘는 재료를 가득 싣고 집에 온 덕에 냉장고가 꽉 차 버렸다.


그래서 어제도 엄마가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줄 알았다.


비도 오는데, 방금 삼겹살도 사서 막 집에 도착했는데 지금 출발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던 참에 엄마가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서 치킨을 시켰어.” 라며 말을 꺼냈다. “근데 비가 오니까 너네도 치킨 먹고 싶을까 봐 시켜주려고 전화했지.”라고. 치킨집은 우리 집 근처에도 10곳이 넘는데 무슨 치킨까지 그 멀리서 시켜주려고 전화를 건 건지 정말 우리 못 말리는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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