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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24. 2021

3월 22일 월요일

어느새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월요일의 일기

1. 꼬리표

처음 나한테 붙었던 꼬리표는 아빠 회사 이름이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아빠가 다니시던 회사가 전국으로 인원을 재배치했고 우리는 수도권으로 이사를 왔다. 어딜 가나 아빠 회사 동료의 가족들이 있었다. 학교에도 있었고 아파트에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흔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꼬리표였을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의 이름이 꼬리표로 붙었다. 점수에 맞춰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대학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공에 더 큰 뜻을 두었던 대학 진학이었는데, 그저 대학의 이름만 꼬리표로 나를 따라다녔다. 그 꼬리표는 취업을 하기 직전까지 혹은 그 직후까지 나를 괴롭혔다. 좋은 학교가 아니었으니 아마 괴롭혔다는 말이 맞겠지.


회사에 입사하고 나니 다행스럽게도 꼬리표들이 하나씩 힘을 잃어갔다. 아빠 회사의 이름이나 출신 학교 이름은 더 이상 나를 따라다니지 않았다. 회사 안에서의 내 꼬리표는 고작 소속 팀과 업무명뿐이었고 그마저도 회사 밖에서는 아무 힘을 쓰지 못했다. 비로소 내 이름만 남게 되었다.

겁도 걱정도 우려도 많은 나는 동시에 호기심도 많아서 세상에 쏟아지는 신문물에 잔뜩 가입하고 써보곤 하지만 그것들을 연결시키지 않았다. 예전의 꼬리표가 오히려 안전하다 느껴질 정도로 이제 나에게 남아있는 꼬리표는 개인정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 체력

지난 2주간의 나는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잠에 들었다. 멀리서 보면 따분한 일상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꽤 촘촘했던 이른 봄의 시간들을 보냈다.


창의성은 체력에서 나온다던데, 똑똑한 사람들은 매일의 에너지와 시간을 알맞게 안배해서 쓴다던데. 나는 급한 성격 탓인지 넘치는 호기심 덕인지 매일 에너지가 비축되기 무섭게 부지런히 써버리곤 한다. 체력을 기를 방법을 연구해봐야겠다.


3.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을 적는 것

작가의 서랍 속에 지난 두 번의 월요일기를 넣어두고 조금씩 글을 더했다. 매일 아침저녁 지하철의 숙제처럼 발행하지 못하고 그저 일기를 읽고 또 읽을 뿐이었다. 일기장에 펜으로 꾹꾹 눌러 일기를 쓰고 싶지만 그마저도 게을러 못하는 나를 위해 선택한 월요일기의 리듬마저 잃어가는 기분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젯밤 오랜만에 클럽하우스에서 정태영 부회장의 브랜딩 토크를 들었다. 스피커 중 한 명이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지 그리고 영감을 이끌어내는 자신만의 컬렉션이 있는지” 물었다. 정태영 부회장은 아주 현실적으로 답했다.


“영감이라고 해서 갑자기 신기루처럼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목표하는 공간이나 일을 몇 년에 걸쳐 준비하고 많이 찾아보는 것뿐. 좋은 공간들을 직접 찾아가 보다 보면 저절로 영감이 떠오른다. 영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컬렉션을 모으지 않는다. 그저 미술관에서 열심히 즐기고 증발되는 것들에 대해 투자할 뿐이다. 무용과 행위예술과 같이 그곳에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에 투자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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