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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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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pr 06. 2021

4월 5일 월요일

유난히 맑았던 기분 좋은 식목일의 일기

1. 떡과 떡볶이

몇 해 전부터 겨울이 되면 살이 찌곤 했다. 첫겨울엔 2킬로 정도 소소하게 쪘지만 그다음 해부터는 눈에 보일 정도로 살이 붙기 시작했다. 처음엔 추운 날씨 탓에 급격히 줄어버린 운동량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겨울을 뺀 나머지 세 계절은 대부분 체력이 늘어날 정도로 산책을 하곤 했기 때문에 아주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생각했었다.


떡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바로 지난겨울이었다. 겨울마다 시골에서 갓 뽑아낸 가래떡을 보내주시는 조금 먼 사돈 덕에 나는 겨울밤 보일러를 뜨끈하게 틀어둔 방바닥에 앉아 가래떡을 즐겨 먹었다. 어느 밤엔 한 줄 또 어느 밤엔 두 줄씩. 꿀을 잔뜩 뿌리고 설탕마저 가득 올린 가래떡을 먹고 나면 추운 밤 전기장판 위에서 온 몸을 녹이며 깊고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운동선수들이 급하게 체격을 키울 때 먹는 것이 떡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가래떡은 나의 소울푸드였고 겨울밤의 든든한 위로이기도 했다.


냉장고 한편에 뽀얀 가래떡을 가지런히 남겨둔 채로 봄을 맞이했다. 구워 먹자니 그간 떡으로 쪄버린 살집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떡을 고이 썰어 떡볶이를 해 먹기 시작했다. 밤마다 구워 먹었던 두 줄을 같은 크기로 예쁘게 잘라 내어 떡볶이를 만들면 알맞은 2인분이 되었다. 이토록 넉넉한 양의 가래떡을 매일 밤 쥐포를 구워 먹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었으니 살이 불어나는 건 시간문제였겠구나 싶으면서도 두통이 올 정도로 일이 바쁜 날이면 어김없이 가래떡을 썰어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어느덧 5번째 휴직을 시작했다. 휴가를 낸 월요일처럼 크고 작은 일들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휴직 첫 주의 월요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고 짧지만 알찬 점심시간을 보내고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탈 정도로 유난히 좋았던 하루였다. 하루를 마치고 냉장고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가래떡을 발견했고 오랜만에 곱게 잘라 떡볶이를 해 먹었다. 겨울이 정말로 끝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 벚꽃

지난주 남편이 퇴근길에 벚꽃이 후두러지게 피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 길로 나가 벚꽃을 구경했다. 운좋게 집근처에 피어있는 벚꽃길이 한산한 틈을 타 동으로 서로 두 번이나 차로 왔다 갔다 하면서 꽃구경을 했다. 차 안에서 요즘 푹 빠져 있는 가수 김수영의 노래를 여러 곡 들었다. 올해는 벚꽃엔딩도 한 번 안 듣고 꽃구경을 한다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그 노래를 찾아 틀었다. 주말 사이 비가 오고 놀랍게도 오늘의 벚꽃나무에는 초록 새 잎이 돋아 있었다. 어찌나 푸르른지 꽃구경을 하러 나온 사람들도 새로 돋아난 이파리를 한참 바라보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왠지 녹음이 푸르른 여름이 기대되는 풍경이었다. 하염없이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이었다.


3. 전화 영어

나는 요즘 하루하루 기대와 우려 속에 산다. 계기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우연이랄 것도 없는 시간을 보낸다. 어느 밤엔가는 불면 속에 긴 기도를 하기도 하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걷고 짧은 기도를 하기도 한다.


4월 한 달 동안 주 3회 전화 영어를 신청해둔 것을 깜박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받은 첫 전화가 영어 수업이었다니. 미국 유학이 어느덧 10년 전이니 그 시절 배웠던 영어실력이 남아있을 리 만무한 데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갑자기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질문에 형편없는 단어와 문장으로 겨우 대답을 마쳤다. 얼추 10분을 마치고 나니 선생님이 몇 가지 발음을 교정해주었다. 언어는 뭐랄까 투자 대비 휘발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억울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아침마다 부지런히 하다 보면 아주 조금은 늘겠지.



2021년 봄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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