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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pr 13. 2021

4월 12일 월요일

큰 비가 내리고 성큼 봄이 온 월요일의 일기

1. 보일러가 고장 났다

기분 나쁜 꿈을 꾼 날이었다. 꿈은 반대라더니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고 생각하며 오전을 바삐 보냈다. 그리고 마치 데자뷰처럼 나갈 준비를 마치곤 ‘오늘 같이 바쁜 날 보일러가 고장 났으면 어쩔 뻔했어.’라고 생각하며 들여다본 보일러가 정말 거짓말처럼 고장 나있었다.


주말이 오기 전에 보일러 수리공을 불렀지만 고치는 건 어려운 상태라 보일러를 통째로 갈아야 한다고 했다. 임시방편으로 전원을 내렸다 올리니 온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보일러가 고장 난 날 저녁의 우리 부부는 혹한기 같은 샤워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마저도 감지덕지였다.


월요일이 되어 보일러를 교체하고 세탁실을 정비했다. 사실 이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뤄두었던 일이었다. 문자 그대로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꿈에서도 그렇게  년을 앓던 사랑니가 빠졌었는데 사실은 나쁜 꿈이 아닌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해결한다는 예지몽인  쳐야겠다.


2. 큰 비가 내렸다

꼭 1년 전 봄, 매일 창문을 내려다보며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는 핑계였지만 사실은 모두의 발이 묶이기를 괜한 심술로 바라기도 했었다. 요 몇 주 사이 큰 비가 내리고 금방이라도 여름이 오고 또 장마가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 나의 바쁜 엄마

내가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곤 엄마는 줄곧 직장을 다녔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나를 앉혀두고는 “엄마가 이제부터 일을  건데 괜찮을까?”라고 물었던 기억과 비가 많이 오는  혼자 학교 처마 아래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던 기억이 아주 희미하게 종종 떠오른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 남동생이 이마를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을 했다. 엄마는 나에게 동전 얼마를 들고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기사 아저씨와 버스 안에 계시던 여러 어르신 덕분에 9살이었던 나는 병원 앞에서 무사히 내릴  있었다. 아픈 동생에게 전달하려고 들고 갔던 레고  박스를 병원 로비에서 엄마에게 전해주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려 병원에 들어갈  없었고 나보다  어린 남동생만 병원에 두고 엄마는 집으로   없어서 그대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던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와의 사춘기 냉전이 완전히 끝났던 것 같다. 명절이면 전 부치는 엄마 곁에 앉아 있다가 지짐팬의 코드를 뽑자마자 우리 둘은 홀연히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가 전통차 한 잔을 뽑아 먹고 시골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어린 시절 힘이 들었다던가 외로웠던 기억이 있었나 더듬어 본 적이 있다. 종종 엄마를 기다리던 오후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바쁜 엄마의 모습도 그 나름대로 나에게 참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보니 새삼 엄마가 직장에서 보낸 시간들이 쉬이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25년이 넘는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한 경의로움이 생기기까지 했다. 엄청난 끈기와 근성이랄까.


오늘은 아침부터 집에 다녀왔다. 텅 빈 집에 덩그러니 로봇청소기만 남아있는 여전히 바쁜 우리 가족. 바쁜 엄마를 꾀어내어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었다. 오늘 점심을 함께해서 좋았다는 엄마의 문자를 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50대의 내가 가질 얼굴을 가진 나와 똑 닮은 엄마 곧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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