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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17. 2021

5월 10일 그리고 17일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이 고장 난 김에 쓰게 된 월요일기

1. 출퇴근 지옥철

5월 10일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이 고장 났다. 출근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하는 지하철을 탔지만 출근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하고야 말았다.


5월부터 새로 출근하는 회사로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지하철 환승을 해야 한다. 그 덕에 난생처음 출퇴근 지옥철을 경험하고 있다. 수백 명의 회사원이 타고 내리는 환승역에서 모두를 헤치고 내 갈길을 찾아 무소의 뿔처럼 열차 승강장에 가서 서는 게 이렇게 고된 일일 지 정말 몰랐다. 집에서 기분 좋게 뿌리고 나온 향수도 지옥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향수 내음이 남아있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몸에서 여러 낯선 이들의 체취가 진동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루 종일 무한하게 쏟아지는 각종 무지함과 낯섬을 이고 지고 퇴근길 지하철에 올라서면 조금은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교육을 받는 중간중간에도 울컥함이 올라오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면 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 (내가 선택한 이직이라는 갑작스러운 사건)을 돌이켜보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이 모든 피로감이야말로 코로나 탓으로 돌려도 좋을 것 같다.


2. 업무 분장에 관한 변

5월 17일 월요일. 모든 교육이 끝나고 2주 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새 회사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게 된 동기들과의 눈물겨운 작별이 시작되었다.


공식적인 업무 첫날이었던 오늘 업무 분장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업무 분장이 이미 완벽히 되어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그 와중에 쉴 새 없이 인수인계를 받고 있다. 배우고 묻고 배우고 묻고. 전 직장에서 유난히 후배 복이 없던 터라 선배나 사수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저 좋은 후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지.


그래서 말인데 업무 분장은 아직 물어보지 말아 주세요. 저도 잘 모르니까요. 저 오늘 공식 첫 출근일이거든요.


3. 일상은 엉망

몸과 마음이 바빠지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집안일인데 주말이 되기 전까지 집은 거의 아수라장 중에서도 최상급 아수라장이 된다. 기본 N일차의 설거지와 청소기를 못 돌려 떠다니는 나의 짧은 머리카락들, 그리고 빨래통에 쌓여가는 빨래들.


집안일이야 각 잡고 하면 몇 시간이면 금방 해낼 수 있지만 무너져버린 일상 속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다짐까지 다시 세우기엔 조금 어려움이 있다. 내가 집에서 유지하는 제로 웨이스트는 1) 플라스틱 물 안 마시기 2) 천연 수세미 사용하기 3) 리필 가능한 샴푸 쓰기 4) 비닐봉지 이용하지 않기 정도. 그중에서 이틀에 한 번씩 보리차를 한 솥 끓여 플라스틱 물을 줄이는 1번 항목을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된다. 물은 마셔야겠고 냄비와 물통을 씻을 시간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퇴근길에 물을 한 병씩 사 오곤 한다.


어서 회사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은 사실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의지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조금 더 부지런해야 지킬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때에 맞춰 천연 수세미도 갈아주어야 하고 집에서 밥을 해 먹어야 쓰레기가 줄기도 하니까. 여러모로 심적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일상이 정갈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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