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May 03. 2021

5월 3일 월요일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1. 소문의 진상

7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면서 나에게 붙은 숱한 꼬리표들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 어느 지점에서 온 누구, 어느 부서의 누구 같은 때로는 번거롭지만 나의 소속을 알려주던 꼬리표들 전부.


퇴사 소식을 알리고 그다음 날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재테크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수백억을 벌어 회사를 관두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에 99%의 동료들은 웃어넘겼고 1%의 동료들은 그 소문을 퍼다 날랐다.


사실은 퇴사 인사를 하면서 그 소문 덕에 나도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친한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가릴 수 있는 장치가 되어주었고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유관부서에는 퇴사 인사를 전하는 인사말이 되어주었다. 사실 그 소문의 진상은 지난주의 내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막아주었던 헛소문이기도 했었다. 생각보다 미안했고 더러는 섭섭했던 퇴사. 내가 떠난 뒤에는 주로 나의 부족했던 것들이 또 다른 소문이 되어 내 자리를 메우겠지만 좋은 사람으로 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2.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첫 출근을 했다. 일명 까마귀 정장을 입고 곱게 다린 흰 셔츠를 함께 갖춰 입었다. 함께 입사한 동료들과 마스크 아래로 함박웃음을 지어가며 회사의 어르신들을 뵙고 인사를 나눴다. 사실 간밤에는 너무 떨려 20대 중반 첫 회사를 입사했던 때를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되지도 않는 눈웃음을 연신 지어내며 밝게 웃었다.


아침 일찍 지하철 역에서 내려 회사 입구에 서자마자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일주일 사이에 아니 한 달 사이에 나는 많이 달라져버렸다.


그렇게 오늘 두 번째 입사를 하게 되었다. 첫 회사 첫 계약서보다 조금은 똑똑하게 글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깐깐하게 따질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작은 조직에 놀랐고 의외로 체계적인 업무 절차에 감탄하기도 했다. 전 회사의 입사 절차도 이렇게 풍성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말도 안 되게 맑은 날씨 덕에 건물 곳곳의 녹음이 짙고 푸르렀다. 5월이 돼버리다니.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4월 26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