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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pr 26. 2021

4월 26일 월요일

퇴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 생일

작년 남편 생일 전후로 계획했던 포틀랜드 여행을 취소하면서 올해에 더 근사한 곳으로의 완벽한 일탈을 꿈꿨다. 하지만 올해오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정도의 생일을 맞이했다.


어버이 날 기념으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근사한 식사를 대접했고 선물 받은 호텔 숙박권을 쓰며 화려한 여행을 다녀왔다. 게다가 아빠와 남편 생일이 하루 차이인 덕에 다 같이 모여 귀여운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노래를 불렀다.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일이지만 일 년 사이 적응이 되어버린 건지 그저 옹기종기 모여 건강히 식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년 생일에는 올해와 조금은 달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마스크를 벗을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아주 작은 바람 같은 것.


2. 3월과 4월 사이

그러니까 3월은 나에게 큰 바람이 분 한 달이었다. 습관처럼 해오던 매달의 인수인계가 큰 벽처럼 느껴졌고 어딘가 모르게 틀어져버린 톱니바퀴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5번째 휴직과 복직을 맞이하면서 아마도 처음으로 느꼈던 기분. 그저 흘러가겠거니 라고 생각하기엔 조금 갑갑했다.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구인 사이트를 쥐 잡듯 뒤졌고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공고를 대여섯 개 찾아 부랴부랴 지원하기 시작했다. 3년 전 처음 이직을 고민했을 때 지원했던 분야부터 요즘 한창 잘 나가는 게임업계까지 다양하게 열어두고 서류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운 좋게 면접 기회를 얻었다. 첫 면접 때 쌀쌀했던 정장이 최종 면접 때는 오히려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계절이 바뀌었다. 벚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보며 마음이 조금은 간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3월과 4월을 보냈다. 한 달간의 채용 관문을 다 거치고 나니 그제야 깊고 긴 잠에 들 수 있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체력을 모두 소진한 것처럼 허기가 져서 하루에 5끼가 넘게 챙겨 먹기도 했다. 1살이라도 더 먹었더라면 아마 취업은 시도도 못했을 것 같았다. 취업도 이직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점심 즈음엔 여느 때와 같이 연희동 반찬가게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잘 되지 않아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달래던 때에 합격 통보가 왔다.


그렇게 나는 첫 퇴사를 하는 중이다. 너무도 간결하고 짧은 퇴사 과정에 조금은 놀라는 중이기도. 지난 시절의 퇴사한 동료들은 한 달 동안 퇴사 전 근무를 하곤 했으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난 7년 동안 생각보다 많은 출장과 업무를 겪으면서 내가 어떤 것을 얻었을지 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새로운 회사에서 일정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겠지만 부디 단단한 경력과 현명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되어있기를. 나의 구 남친같은 전 회사! 부디 승승장구하고 어디 가서 욕도 좀 덜 먹으면서 잘 버텨줘.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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