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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24. 2021

5월 24일 월요일

0년 24일 차 신입입니다만

1. 나의 욕심이기를

오늘은 아침에도 오후에도 회의가 있었다. 아침 회의는 차라리 나았달까. 계약서를 열심히 꼼꼼히 읽고 참석한 후에 히스토리를 캐치 업하고 분위기를 읽으면 되는 일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나의 착한 선배님은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내 공인 양 내 이름을 달아 돌려주었다. 조금 민망하고 부끄럽게 대리 수상한 기분이 들었다. 신입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신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불편해졌다.


7년 2개월의 경력에서 0년 24일 차 신입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여전히 아침이 두렵고 저녁이면 진이 빠지고 다리가 퉁퉁 붓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7년 전 내가 첫 회사에서 첫 실수를 했던 날, 첫 출장을 가던 날, 첫 업무를 맡던 날 중 어떤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근 2년 간 매일 울고 괴로워하던 기억만 남았다. 아마 그때도 신입의 도리가 무엇인가를 하염없이 고민하며 예의 바르게 굴면서도 아주 번거로운 질문들을 하루 종일 하며 버텼겠지. 일종의 성취감으로 시작한 신입의 인생은 나의 욕심과 더해져 일종의 패배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이 모든 것이 다 내 욕심에서 비롯된 기분이었으면. 내 욕심일 뿐이기를.


2. 작약

봄이 오고 작약을 기다렸다. 작년 이맘때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꽃시장에 가서 비싼 작약을 꼭 한 단씩 사다가 집에서 피우곤 했다. 밤이면 시원한 베란다에 옮겨두고 낮이면 눈길에 바로 가서 닿는 책장 위에 올려두며 매일같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관찰했다.


올해는 유난히 몸도 마음도 바쁜 탓에 꽃시장은 커녕 집에 꽃을 둔 적이 언젠지도 모르게 여름을 맞이한다. 내년 봄에는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겠지. 작약도 마음껏 보고.


3. 위드 코로나

이렇게 오래 코로나가 끝나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작년 여름 마스크 아래로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보면서 내년엔 그래도 안 써도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겨우 버텼었는데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작년엔 무서웠다면 올해는 버티기의 마음이랄까.


봄이 시작되고 날이 따뜻해지니 꽃가루와 황사가 아주 심한 날을 제외하고는 야외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일 년 사이 테라스를 운영하는 음식점들이 많아진 덕에 작년에 비해 오히려 풍요로운 위드 코로나 시재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손꼽아 바라고 있기는 하다. 목욕탕 가고 싶다고. 진짜로.

신용산 어프로치
인왕산 대충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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