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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Nov 09. 2021

똥 쌀 때 만큼은 가만히 놔둬주라

화장실에서만큼은 편안하게 있고 싶은 마음  

  근무시간 중,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적인 공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어딜까? 나는 화장실이라고 생각한다. 1평도 되지 않는 그 자그마한 공간에서 나는 잠깐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 사찰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라고도 하지 않는가. 해우소, 근심을 내려놓고 번뇌가 사라지는 곳. 배 속의 번뇌와 잠시나마 온전히 혼자만의 공간을 가짐으로써 마음 속의 번뇌를 함께 해소하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틀동안 소식이 없었던 배에서 반가운 신호를 보낸다. 근심을 내려놓기 위해 해우소로 향한다. 용케도, 마침 수업이 비어있는 시간이다. 수업 중에는 선생님의 품위(?)유지를 위해 화장실이 급하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기에, 빈 시간을 잘 활용해야한다. 화장실 문을 닫고 부턴, 나만의 시간이다. 시원하게 묵은 근심덩이들을 내려놓는다. 그때, 문 밖에서 불청객들의 귀여운 발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두 명이다. 같은 층을 쓰고 있는 1학년 교실의 학생인 모양이다.   


"아직 쉬는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2분 남음) 기다렸다가 같이 가줘." 한 명이 화장실 문을 닫으며 말한다.

 - 알았어. 다른 한 명이 말한다. 볼 일을 보러 온 건 아닌 것인지 문 닫는 소리가 더 들리진 않는다. 


이 때부터 나는 숨을 죽인다. 더이상 이 곳은 편안한 공간이 되지 못한다. 혹시 냄새가 나려나 불안해진다.


"똑.똑.똑"


내가 들어 앉아있는 문에 노크소리가 들린다. 옆에 빈 칸이 많은데 왜.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사람이 있다는 의미로 같은 리듬으로 화답한다.


"똑.똑.똑"


"사람 있나봐. 과연 친구일까? 선생님일까?"


친구 아니야, 선생님이야.

그러니 할 일 끝났으면 어서 나가줘. 소리없는 외침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었길.

신발때문에 신분이 들킬까 양 발을 들려다가 나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해 관두었다.  


"야, 이것봐. 여기 그림이 달라졌다."

이 와중에 화장실 문에 있는 낙서의 변화까지 자세히 짚어보고 가는 불청객들이다. 

관찰력이 뛰어나구나. 이제 어서 나가줘. 그 때 한번 더 들리는 노크소리


"똑.똑.똑."

나는 아까 보다 좀 더 힘을 실어 같은 리듬으로 응답한다.

"똑.똑.똑."


"아무래도 선생님인 것 같지, 친구는 아닌 것 같지?"


관찰에 이어 추리까지 해낸다. 노크소리의 강도로 문 너머의 주인공을 찾아내고 있다.  

3학년 때 배울 기초탐구기능을 벌써 습득한 두 꼬마 과학자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야 나는 물을 내리고 거사를 마무리 짓는다.


너희들, 참 귀엽다만.

똥쌀 때 만큼은 좀 내버려둬주라.

선생님은 너희 앞에선 이슬만 먹고사는 신비로운 존재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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