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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Oct 23. 2024

눈에 보이는 열매  

조용히 자축하며 성찰하는 밤

  4학년 과학시간에 배우는 '식물의 한살이 단원'에서는 강낭콩의 한살이를 관찰한다. 다른 식물을 관찰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과서에 강낭콩이 실려있는 것은 강낭콩의 한살이 주기가 짧기 때문이다. 씨앗을 심으면 일주일 안에 뿌리와 싹을 틔운다. 줄기와 잎이 점점 자라고 꽃이 피고 진 자리에 꼬투리열매가 맺히기까지 의 모든 한살이 과정을 두세 달 사이에 관찰할 수 있다. 작은 씨앗이었던 강낭콩이 묶어둔 낚싯줄을 타고 줄기를 쭉쭉 뻗어 나가는 걸 보면 그 성장 기세가 놀랍다. 맺힌 꼬투리열매를 열어 아기 발가락처럼 오종종하게 모여있는 강낭콩 씨앗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종종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강낭콩처럼 성장세와 열매가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1년도 아닌 두세 달 만에 결실을 맺는 강낭콩의 속도를 바라다니 과욕이라는 것을 알지만 100년을 내다보고 묵묵히 씨앗을 심는 것이 때론 막막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당장의 변화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전망해야 하지만 지금 바로 눈에 보이는 열매를 맛볼 수 없다는 점에서 갈증을 느낀다. 1년 동안 지지고 볶으며 열심히 가르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느껴지는 해도 있었는데, 그게 재작년과 작년이었다. 작년 말에 썼던 일기에 '올해는 열매가 없다, 한 해 농사를 잘못 지은 것 같다.'라고 적혀있었는데 재작년의 일기에도 비슷한 표현이 적힌 걸 보고 작은 충격을 받았다. 교사로서의 나를 스스로 낮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 2년째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과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를 증명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창 시절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험 점수와 등수, 학점처럼 숫자로 나의 능력을 증명해 내며 살았던 16년의 흔적일 것이다. 교사의 일이 '매출 100% 상승, 투자금 10억을 유치, 영업실적 1위'와 같이 딱 떨어지는 수치로 그 성과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평가할 방법이 없다고 느껴졌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첫 연구대회 도전의 동기였다. 연구대회는 승진을 꿈꾸는 선생님들이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도전할 엄두도 안 냈다. 그런데 올해는 눈에 보이는 결실로라도 나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너, 잘하고 있다고. 어쩌면 어리석은 선택일 수도 있다. 성과 위주로 나를 평가하는 생각의 습관에서 벗어나 1년 동안 학교에서 수고하는 나의 과정을 격려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어여삐 여기는 생각의 습관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모습일 테니까. 그래도 이 도전이 매너리즘이 올락 말락 하는 내 학교 생활을 환기시킬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계획하고 운영하다 보면 보다 짜임새 있게 학급 운영을 할 수 있을 거란 선배들의 경험담도 이 도전이 그저 무의미한 소모로 끝나진 않을 거란 기대를 하게 했다. 그렇게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를 연구대회에 쏟았다. 구구절절하게 그 과정을 모두 적진 않겠지만 하나만 말하면, 추석 당일에도 보고서 마무리를 위해 아무도 없는 학교로 향했다. 보고서 최종, 보고서 진짜 최종, 이거진짜진짜!최종, 이거찐찐찐찐찐!!이게진짜최종.....(이하 생략). 보고서를 제출했을 때의 후련함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연구대회 실사 연락을 받았다. 실사가 나온다는 것은 1등급 후보자라는 의미다. 제출한 보고서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기뻤다. 정말 기뻤다. 수업태도가 좋지 않은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다가도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올 만큼. 20쪽짜리 보고서 한 편에 들인 나의 시간과 노력이 눈에 보이는 열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열매, 너 달콤하구나. 2024년 연말의 일기장엔 아마 '올해는 열매가 없다.'는 말은 적히지 않을 것이다. 일기장에 이 문장을 지우게 된 건 다행이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피하곤 했던 나에게는 일보전진과 같은 경험이다. 나의 교육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을 갖되 자만하고 싶진 않다. 연구대회 1등급과 1등급 교사 사이에 등호가 쓰일 순 없다. 교사의 일은 그렇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연구대회를 경험하고 나니 더 체감한다. '농사를 짓는 데는 1년의 계획이 필요하고 나무를 심는 데는 10년의 계획이 필요하며 사람을 키우는 데는 100년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옛말이 아주 답답하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1년 동안 운영한 교육활동을 정리한 보고서로 눈에 보이는 열매를 얻었지만 내가 하는 일은 100년을 내다보고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더 깊이 마음에 새기고 싶다. 아이들에게 심긴 씨앗이 수년, 수 십 년, 어쩌면 정말 100년 뒤에 열매를 맺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썩은 씨앗을 심는 교사는 되지 말아야겠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소망하며 묵묵히 내 몫을 하는 교사가 되어야지.


그래도 오늘 밤은 조용히 자축한다.

수고했다,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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