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빠와 아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남들 하는 건 다 따라 해 봤지만 아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단 둘이 있으면 어색했고,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짜증이 났고, 짜증은 다시 우리 사이를 벌려놓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아이는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했고,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면 눈치만 보며 거리를 두었다. 우리는 친구라기보다 타인에 가까웠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코로나 이후 엄마와 장인어른을 연달아 떠나보내며 내 몸에도 이상이 생겼다. 한 달 새 7kg 이 빠졌고,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아들 1학년에 맞추어 와이프가 하려던 휴직을 내가 하게 되었다. 미안했지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뜻하지 않게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다.
입사 후 처음으로 찾아온 무한한 자유에 난 허덕거렸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매일 저녁 블로그를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모든 부모들의 버킷 리스트에 있다는 바로 그것. 제주 한 달 살기.
바로 이거다를 외치며 와이프에게 부푼 꿈을 털어놨다. 둘이 가는 게 힘들지 않겠냐고 했지만 걱정 없다고 했다. 방학 시즌인 7월에 맞춰 일사천리로 펜션과 비행기 예약을 마쳤다. 큰 일을 결심한 스스로를 칭찬하며 뿌듯해하던 5월 어느 날, 문득 아이 생각이 궁금해졌다. 제주도, 여행.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들이라 아이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진짜?'라고 말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이의 반응을 기대하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물었다.
"아빠랑 제주도에 한 달 동안 놀러 갈래?"
1초. 2초. 3초… 아이의 침묵이 길어졌다. 그리고 내뱉은 첫마디.
“엄마는?”
“엄마는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해서 아빠랑 둘이 갈 거야”
1초. 2초. 3초… 아이는 울었다. 소리 없이 울었다. 아빠와 같이 가는 것이 정말 싫어서 인지, 차마 같이 가기 싫다고 말하기 미안해서인지는 몰라도 서럽게 울었다. 당황한 나는 엄마도 같이 갈 수 있다고 거짓말로 둘러대며 아이를 달랬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서러웠다. 하지만 어김없이 7월은 찾아왔고 어렵게 얻은 한 달의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온갖 걱정들이 세차게 휘몰아쳤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제주를 향해 출발했다.
여덟 살, 마흔네 살. 서른여섯 살 차이 부자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이가 엄마를 생각할 틈이 없도록 매일매일 계획을 세워서 어딘가로 나갔다. 놀다가 피곤에 지쳐 돌아오면 씻고 잠들기 전에 서로의 손을 잡은 채로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자리 이야기도 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도 하고, 오늘 즐거웠던 일도 이야기하고, 내일 뭐 할까 고민도 같이 하고. 근처 5일장에 들러서 사 온 반찬으로 매일 저녁 마주 앉아 밥을 먹었고, 귤을 까먹으며 방학 숙제도 같이 했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일주일 후 엄마가 처음 왔다 가던 날 아이는 울었다. 하지만 두 번째 왔다 가던 날 아이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빨리 펜션으로 돌아가서 아빠랑 놀고 싶다고 했다. 2주 만에 우리는 같이 놀고 싶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2주 동안 내가 무얼 했냐고? 물론 돈의 힘을 빌어 온갖 놀거리와 선물을 풍성하게 제공하여 아이의 환심을 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둘 만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채워준 소소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화가 난다고 아이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가 술 한 잔 하고 올 수도 없었고, 아이도 아빠 눈치가 보인다며 달려가 안길 엄마가 없었다. 좁디좁은 펜션 안에서 말 상대는 아들 밖에 없었고, 눈치가 보여도 놀아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빠 밖에 없었다. 서로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2주가 지나자 우린 비밀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아이의 같은 반 친구 이름을 모두 외우게 되었고, 아이는 아빠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작년에 왜 매일 늦었는지, 올해는 왜 일 안 하고 자기랑 놀아주는지 알게 되었다. 소소한 대화들이 쌓이며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는 티격태격 대며 산다. 화내고, 짜증 내고, 싸우고, 울고. 하지만 금세 다시 떠들고, 웃고, 안고, 사랑한다. 요즘은 매일 저녁 언제 오냐며 전화를 하고, 놀러 갈 때 아빠가 없으면 안 간다고 한다. 심지어 좀 귀찮을 정도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시간이 없었다면 이런 행복한 귀찮음을 누릴 수 있었을까.
얼마 전 ‘슈가맨’에서 가수 김국환이 성인이 된 아들과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를 부르는 모습을 봤다. 너무 행복한 두 분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괜시리 옆에서 같이 빨래를 개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다. 친구가 되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