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달린다. 지하철역 내리자마자 124개 계단을 뛰어오른다. 가뜩이나 추워진 날씨에 얼굴은 시리고, 숨은 턱에 차오르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지만 이 악물고 뛴다. 출구를 나서면 다시 내리막길. 직진 후 좌회전 2번, 우회전 1번이면 목적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늦추는 순간 울리는 핸드폰.
“아빠 어디야? 왜 이렇게 안 와?”
오늘은 와이프가 야근하는 날. 학원 끝나는 6시 반에 맞춰 가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이미 시간은 7시 반을 지나고 있다. 풀어진 다리 근육에 주문을 걸고 다시 달린다. 눈앞을 가리는 하얀 입김을 보고 있으니 예전 생각이 난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속도를 올려서 달리기 시작한 건 아이가 5살 무렵부터였다. 귀여움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 조그맣고 귀여운 녀석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계단이든, 오르막길이든 상관없었다. 멀리서 집이 보이면 그때부터 뛰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울리는 도어록 해제소리에 엄마랑 숨바꼭질하다 역동작에 걸려 넘어지는 우당탕탕 소리만 들어도 좋아서 웃음이 나고, 일찍 오지 못해 눈물이 났다. 매일 생각했다. 우리에게 찾아와 줘서 너무 고맙다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삐지고, 토라지고, 소리 지르다가도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 행복했다. 복숭아처럼 발갛고 토실한 볼에 입 맞추고, 사과 두쪽을 붙여놓은 엉덩이를 두들기는 건 마약과도 같아서 그 중독성에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매일 와이프와 잠든 아이를 사이에 두고 이 귀엽고 신기한 생명체의 탄생에 관해서 토론하다 잠들곤 했다. 토론의 주제는 ‘이 아이는 과연 누구의 자식인가’와 같은 유치한 문제였고 항상 승부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신론자인 우리 부부도 누군가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질문이 많아졌다. 가장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은 성에 관한 것이었지만,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질문은 존재의 방법과 이유에 관해서였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이건 그나마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왜 태어났어?”, 여기서부터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엄마랑 아빠가 사랑해서 널 낳은 거야’라고 어물쩍 넘겼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쌍의 남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떠한 행위를 통해서 태어난 존재가 자식이라고 설명한다면 그건 너무 수학적이지 않은가. 인과관계를 넘어선 연결의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이 멈추면 걷거나 달리라고 했던가. 아이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나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내가 먼저 태어나서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닐까. 알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걸.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 뛰고 있는 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난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내가 태어난 이유를 알게 돼버렸다.
도서관이 눈앞에 보인다. 평일 저녁 조용한 열람실에 들어가기 위해 숨을 고르고 발 뒤꿈치를 살짝 들고 살금살금 들어간다. 저기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보인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잠시 관찰해 보기로 한다. 숙제를 한다더니 책상에는 만화책이 놓여있고, 왼쪽에 놓아둔 가방에서 끊임없이 뭔가를 꺼내 입으로 가져간다. 뭘 먹었는지 숨기고 싶었겠지만 두툼한 왼쪽 볼에 ‘초콜렛’이라고 시커먼 흔적을 남겨두었다. 이대로 지켜만 보는 게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은 마음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빠~”
속삭이듯 외치는 소리에 웃음이 퍼진다. 머플러를 벗어서 둘러주고 떡진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고작 2학년인데 가방은 왜 이리 무거운지. 책가방을 둘러메고 작은 손을 꼭 잡는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빼빼로를 하나씩 꺼내서 입에 넣어준다. 초콜렛이 발라진 빼빼로보다 혀 끝에 닿는 조그만 손가락이 더 달콤하다. 이러다 닳아 없어질까 걱정되지만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까 싶어 계속 깨문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 먹고, 수다 떨고, 숙제하고, 오랜만에 단 둘이 침대에 누웠다. 엄마가 없는 틈을 타 기습질문을 던져본다.
“누구 아들이야?”
“아빠 아들!”
엄마가 돌아오면 바뀔 답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좋다고 배시시 거리며 눈을 감는다.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어버린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스르륵 잠이 든다.
아마 내일 눈을 떠도 세상은 달라진 게 없겠지만 난 내일도 달릴 것이다. 복숭아보다 말캉하고 부드러우며, 사과보다 아삭하고 탐스러우며, 초콜렛보다 달달하고 달콤한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 내 존재의 이유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