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배 아들과 소인배 아빠

하얗고 귀엽고 맘 넓은 아들과 까맣고 어둡고 속 좁은 아빠 이야기

by 현진형

질렀다. 오늘도. 하지 말아야지 늘 다짐하지만 오늘만 벌써 두 번이나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언제쯤 아들의 잘못을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 줄 수 있는 대인배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냥 음료수를 엎질렀을 뿐이었다. 책상 위의 종이가 젖고 식탁 아래로 흘러내릴 정도로 많은 양이긴 했지만 소리 지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눈치를 보며 몰래 크리넥스 한 장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걸 보고 갑자기 화가 났다. 솔직히 말해주지 않아 섭섭했고, 문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해결책을 보고 답답해졌다. 별 거 아닌 일인데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타고난 잔소리꾼이다 보니 한 번 시작한 짜증은 증기기관차처럼 칙칙폭폭거리며 쏟아졌다. 말 없이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 얼굴을 봤을 때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목소리는 더 커져만 갔고, 급기야 어제 물을 쏟았던 이야기까지 보태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 이거 좀 많이 가는데. 이렇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선 이런 말이 맴돌고 있었지만, 현실에선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벽을 두 번이나 쾅!쾅! 치고 와이프한테 이제 그만하라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채 아무 말도 없이 먹는 점심. 내 눈치를 보며 밥을 먹는 아이 모습에 체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 말 못했다. 대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급하게 먹던 내가 결국 체했다. 바보 같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인 아이에게 난 뭘 기대한 걸까. 아니면 단지 내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한걸까.


화내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은 시도를 해봤다. 여섯 살 무렵에는 터치식 카운트 어플을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아두고 화가 나려고 하면 마구 터치를 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될 때까지 누르면 대략 70~100 사이에 멈출 수 있었고, 조금 익숙해지니 30~50 정도에서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숙제란 걸 같이 하게 된 뒤로는 일단 화가 나면 5분 정도 아이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 당장 눈 앞에 안 보이면 짜증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장 많이 한 방법은 심호흡이다. 코로 4초 들이쉬고, 입으로 4초 내쉰다. 6번을 반복한다.


세 가지 방법은 모두 효과가 있다. 하지만 화의 온도가 100도 미만일 때만 작동한다. 100도를 넘어 증기를 내뿜는 단계가 되면 아무소용이 없다. 뜨겁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은 뿜어내고야 만다. 그리고 남는 건 후회와 자책. 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


악순환의 고리에서 쳇바퀴처럼 돌고있는 나와 달리 반대편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며 살고있는 또 한 명의 인간이 있다. 바로 아들이다.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늘 소리지르는 아빠와 달리, 아들은 내가 잔소리하는 동안 딴 생각을 하며 묵묵히 그 시간을 버텨낸다.


"너는 아빠가 막 화내고 잔소리하면 무슨 생각해?"


"어, 그냥 다른 재밌는 생각해.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있었던 일. 아빠 잔소리는 너무 길어서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와"


처음엔 이 솔직한 반응이 너무 어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당연한 말이었다. 나도 그러지 않았던가. 누가 지겨운 잔소리를 집중해서 되새겨가며 들을까. 이런 당연한 진리를 바보같은 아빠에게 일깨워 주는 아들이다.


사십여년을 살아 온 성격이 쉽게 바뀌진 않는다.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포기하면 영원히 소리지르는 아빠로 남을거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소심해서 작은 일에도 삐지고 화내고 잔소리하는 소인배 아빠지만, 그런 아빠의 잔소리를 묵묵히 받아주고 딴 생각하면서 기다렸다가 친절히 피드백까지 해 주는 대인배 아들이다. 가끔은 내가 아니라 아들이 날 품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대인배라지만 나쁜 기억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에 그것들을 덮을만큼 좋은 기억을 많이 쌓도록 시간을 보내야겠다. 오늘도 대인배의 풍모를 지닌 귀여운 아들의 볼을 주무르며 일어나, 소인배의 짜증을 다하러 회사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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