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잡아도 좋은 사이

아이의 조그마한 손이 내 몸에 닿을 때, 그 따듯함에 대하여

by 현진형

우리 집에는 힐러가 한 명 있다. 스타크래프트 테란 종족의 메딕 같은 존재. 모든 게임의 정석과도 같은 탱커-딜러 조합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힐러. 공격력은 가장 약하지만 게임의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캐릭터. 하지만 게임과 다른 점이 단 하나 있다. 힐링이 무한한다는 것.


아이가 태어나서 날 처음 쳐다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손가락 발가락 열 개를 센다. 탯줄을 자른 다음 하얀 보자기에 안겨 신생아실로 들어간다. 1cm도 안 되는 얇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처음 마주하는 얼굴. 내 주먹보다 작다. 붉게 상기된 동그란 얼굴 안에 눈코입이 귀엽게 들어차 있다. 꼬물꼬물 대는 입술, 작고 동그란 코, 끊임없이 움직이려고 애쓰는 듯한 두 눈. 유리창에 머리를 박은 채 그 작은 움직임들을 지켜본다.


눈이 떠진다. 힘겹게, 너무나도 힘겹게. 온 얼굴 근육을 다 사용하여 간신히 오른쪽 눈 하나를 뜬다. 두 개의 작은 곡선이 위아래로 벌어졌다. 크고 까맣고 빛나는 구슬이 들어있다. 블랙홀처럼 온 세상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쳐다본다. 한 번 마주친 눈은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필사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손 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강렬한 첫 만남을 가졌던 아이가 바로 우리 집의 힐러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맞벌이의 시간이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바빴고 예전보다 시간은 더 모자랐다. 아이가 생기가 넘칠 때 들어오고 싶었지만 매 번 밤늦게 퇴근해서 잠든 아이의 얼굴만 봐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행복했던 건 잠든 아이의 조그마한 손을 잡는 일이었다. 하얗고 부드럽고 포동포동한 손을 잡을 때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기냄새가 잔뜩 묻어있는 손가락 사이에 코를 묻고 깊이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조용히 옆에 누워 그 손을 내 팔에 살짝 가져다 대는 순간부터 힐링이 시작된다. 따뜻한 온기가 말랑한 손을 타고 나를 간지럽히며 들어온다. 너무도 작은 몸속에 얼마나 많은 힘을 가지고 있길래 나에게 이런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걸까. 행복에 겨워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 보면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든다. 안아주고 달래주고 재워줘도 모자랄 판에 아이의 마법 같은 힘에 기대어 난 잠이 들었다.


그 마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난 여전히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는 걸 좋아하고, 아직도 잠들기 전에 어서 손을 내놓으라고 말한다.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이 행복을 평생 느끼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들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


P.S. 사실 손 잡기 전에 바라만 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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