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말을 하면 따뜻하게 받아줘야지

아이의 말에서 인생을 배운다.

by 현진형

"사람이 말을 하면 따뜻하게 받아줘야지"


아들이 울먹거리면 나에게 던진 한 마디. 오랜만에 줄을 교체한 기타에서 버징이 심하게 나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도대체 왜 잡음이 나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기타를 들고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으니 이건 뭐냐, 저건 뭐냐 옆에서 쫑알대기 시작했다. 아 몰라!라고 했더니 눈이 순식간에 빨개진다. 어느 책 제목처럼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되는데 소인배 아빠는 기분이 그대로 태도가 되었다. 한심하다.


감정에 대한 기복이 심한 편이다. 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좋을 때 한 없이 좋았다가 우울할 때는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나름 감정에 대한 컨트롤을 할 줄 알게 되면서부터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혼자서 음악을 듣고, 거리를 걷고, 멍하니 사람들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기분이 나아졌다. 24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루 전의 우울은 씻은 듯 사라졌다. 주위 사람들이 왜 그러냐며 걱정할 때도 하루만 내버려 두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결혼 후엔 그럴 수가 없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내 시간의 많은 부분을 아이의 시간과 교집합을 만드는 데 사용해야만 했다.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어도 숨을 곳이 없었다. 방 한구석에 틀어박혀 봤지만 완전한 차단은 아니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두었지만 나만이 쓸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우울이 오갈 데 없이 마음속에 쌓이다 보면 필연적으로 한 번씩은 폭발하게 되었고, 그런 후에는 자괴감과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가 커서 말이 통하게 된 이후로는 혼자 숨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졸졸 따라와 쫑쫑대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두려워했다. 갈수록 나를 숨겨야만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 나도 변했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다. 가벼운 우울도 쌓이면 무거운 납덩이가 되어 가슴속을 짓눌러 왔다. 납덩이를 내보내는 방법은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밖에 없었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걸 숨긴 채 사는 것보다는 한 번씩 터트리는 것이 나았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그렇게 40년을 넘게 살아왔다. 마흔 살이 넘어서도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기분=태도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준 사람이 바로 아들이었다. 그것도 5살의 아들. 한 번은 와이프가 없을 때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닌 일이었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 쌓였던 걸까. 조그만 아이를 뚜껑식 김치냉장고 위에 올려두고, 프라이팬에 돈까스를 튀기면서 악을 써댔다. 돈까스에서 기름이 튀는 만큼, 내 입에서 침이 튀었고, 입 밖으로 빠져나간 분노는 아이의 온몸을 덮었다. 그때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날 바라보기만 했다. 그게 무서운 건지, 날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날 괴물처럼 생각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게 또 화가 났다. 한참 소리를 지르고 난 뒤 몰려오는 후회. 또다시 24시간이 지나 내 안의 우울과 분노가 사라진 후에 남은 건 자책과 미안함이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빨리 사과하는 게 지론인지라 아이한테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과의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수 없이 미안하다고 반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빠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어?”

“어, 화가 나도 잘못을 용서하면서 말해야지”


그렇다. 난 잘못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인간이 자고 일어나면 하는 게 실수인데 겨우 5살 아이의 잘못을 추궁했다. 그리고 아이는 내 행동에서 잘못된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실수에 대해서 누가 책임이 있느냐가 아니라, 실수한 이유를 찾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말했어야 했다. 인간이, 그것도 40년을 넘게 산 인간이 자신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 스스로도 실수를 인정하고 조금씩 고쳐나가기로 했다. 확률이 낮다고 가능성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때부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를 주문처럼 외우기 시작했다. 5살 아이는 40살 아빠에게 삶의 깨달음을 줬고 '화가 나도 잘못을 용서하면서 말하기'는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핸드폰 메모패드에 적혀있다.


최근 서점에 가 보면 가족에 대한 글이 많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는 절망, 좌절, 분노가 들어있다. 가족은 가장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지만 그렇다고 막 대해도 상관없는 사이는 아니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독립적인 인간들이 모여사는 이상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해도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한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 난 아들에게 예의 없이 굴었고, 선을 넘은 대가로 스스로에게는 후회와 자책을 아들에게는 실망과 슬픈 기억을 남겨주었다. 그 대신 평생 되새길 수 있는 말을 얻었다. 잘못을 용서하며 말하기.


소인배 아빠는 이런 나쁜 기억들이 아들의 기억 속에 남을까 두렵고 미안하다. 하지만 대인배 아들은 언제나 날 용서해 주며 먼저 다가온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다.) 그렇게 먼저 다가오는 아이에게 내가 해줘야 할 것은 단 하나다.


"사람이 말을 하면 따뜻하게 받아줘야지!"


평범한 인생의 진리를 오늘 또 하나 마음에 새긴다. 늘 아빠를 좋은 길로 이끌어줘서 고마워,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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