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필요하지만 경쟁은 싫다
RANK = 수 목록 내에서 지정한 수의 크기 순위를 반환
나래비라는 단어가 있다. 회사에서 관용어처럼 쓰던 말이지만 막상 어원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일본어다. 정확하게는 '나라비'이며 늘어선 모양 또는 줄을 의미한다. 이 말이 한국으로 넘어와서 줄 세우기 혹은 순위 매기기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아마 한 두번 쯤은 들어봤을 거고 영업직군이라면 귀에 거슬리도록 들어봤을 수도 있다. 순위를 매겨서 줄을 세우는 것. 지긋지긋하지만 나름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필요악이 아닐까 싶다.
일 하면서 수 많은 거래처나 혹은 법인 또는 판매사원들을 관리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실적에 집착하게 된다. 매 년 목표가 정해져 있고, 매 달, 심지어는 매일의 목표가 정해진 경우도 있다. 특히 현장에서 영업하는 판매사원들의 경우는 하루하루의 판매실적이 곧 그 사람의 평가와 직결된다. 어릴 때는 A라는 매장에 가서 B라는 매장의 누구는 이번 달에 얼마를 팔았대요.라고 은근슬쩍 흘리기도 했다. 경쟁이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될 거라는 믿음에서였다.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고 인생은 끊임없은 경쟁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장 들어와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꼭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 월에 얼마를 팔든 꾸준히 본인 페이스를 유지하는 분도 있었다. 실적이 들쑥날쑥하지만 정말로 영업이 좋아서 일 하시는 분도 있었다. 세상모든 인간 군상들이 경쟁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아직도 경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올가미에 갇힌 듯 점점 온 몸이 조여와 으스러질 것만 같다.
경쟁 환경 속에서 살다보면 남들을 평가하고 소위 나래비 세우는 데 굉장히 익숙해진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남들을 평가한다. A는 B보다 잘하지만 C보다 못하고, D랑은 비슷하지만 정치를 잘해서 이번에 승진을 잘 하겠네. A매장은 이번 달에 경쟁사보다 매출을 못 했으니 지원금을 끊어야겠네. 일상생활에서도 이건 저거보다 낫고, 너는 누구보다 부족하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면 Top을 시작하는 컨텐츠가 넘쳐난다. 그 Top에 속하지 못하면 낙오자, 실패자로 인식되는 곳. 한국은 유독 그런 특성이 강하다.
경쟁. 적절하면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뭐든 그렇지 않겠냐만서도. 괜히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겠는가.) 동기부여의 가장 좋은 동력은 어떤 포인트 혹은 한계점을 넘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달리기를 할 때 누가 옆에서 같이 뛰면 기록이 좀 더 향상되는 이유와 같다. 하지만 만성적인 경쟁은 본래의 동기부여의 목적은 사라지고, 단순히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욕심만 부추긴다. 그래서 반복적인 경쟁에 노출된 사람들은 이기고 나서의 성취감보다는 허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경쟁은 남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엑셀인간으로 살면서 지금까지 수 백 아니 수 천번의 RANK 함수를 썼다. 그 만큼 누군가를 자의와 상관없이 경쟁이라는 굴레 속으로 끌어들였다. 사과한다. 앞으로 또 몇 번의 RANK를 쓰게 될 지 모르겠지만 미리 사과한다. 부디 이 경쟁이 당신에게 상처로 남지 않기를. 가벼운 숫자 놀음으로 넘어가서 당신은 당신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경쟁 속에서 살 수 있기를. 나 자신도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