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엑셀 인간 10화

AND / OR

세상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

by 현진형

AND / OR = 논리함수 중 하나로 테스트의 조건


국어, 영어, 수학을 모두 잘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 AND

수 많은 재능 중에 딱 하나만 잘 해도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 = OR


요즘 티처스를 많이 봐서 그런지 예문이 삭막해졌지만 AND 함수 만큼은 가장 잘 어울리는 설명이 아닐까 한다. 이 세상은 참 많은 조건값을 따진다. 그 중에서도 AND. 하다못해 결혼하려고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려고 해도 수 많은 조건값을 통과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회사에서 평가 받을 때에도 MBO라는 이름하에 무수하게 많은 항목에서 점수를 받아야 고과를 받는다. 반대로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평가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배민에서 시키는 음식은 가격도 싸고 맛도 있고 리뷰도 좋아야 한다. 우리는 왜 모든 것을 잘 해야 하는걸까.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한국의 교육제도는 너무나 많은 AND를 요구하고 있다. 영어는 당연히 기본을 잘 해야 하고 AND 수학은 최소 2년에서 3년 선행은 해야 좀 한다는 소리를 듣고 AND 수능까지는 체력 싸움이니까 태권도, 수영 같은 체육도 하나 시키고 AND 악기도 하나 정도 배워두면 좋으니까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음악도 시킨다. 이걸 엑셀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IF(AND(영어>=90, 수학>=90, 체육>=90, 음악>=90),"대학","?")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가 1994년이 나오고 무려 30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의 학생들은 그 때의 노래 가사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 모두 똑같은것만 집어넣고 있어"


교육 방식이 아무리 창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막상 부모가 되어보니 공부하는 방식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더 빡세지고 경쟁은 더 치열해졌을 뿐. 예전에는 외워서 되는 문제가 많기라도 했다면 이젠 창의적으로 풀어내기까지 해야한다. 미리 하고, 먼저 하고, 많이 하고, 또 하는 것만 말하는 세상에서 창의가 끼어들 틈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왜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다 잘해야 할까. 이것만 잘 해도 되는 세상은 정말 없는 걸까. 요즘 아이들을 보노라면 예전 닌텐도 위에서 하던 아이스크림 쌓기 게임이 생각난다. 작은 콘위에 색색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올려가면서 중심을 잡는 게임인데 요즘 아이들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안간힘을 써서 중심을 잡으려고 한다. 이게 쏟아지면 인생이 끝일까봐. 아직 너무도 어린데.


남들과 똑같이 수학, 영어, 태권도, 피아노 학원을 보내고 있는 한 아이의 아빠로써 이율배반적인 말일 수 있겠지만 이 놈의 AND는 이제 END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 (서태지는 END가 아닌 AND를 말했지만 나는 AND가 END되길 원한다.) 우리 아이들의 가방 속에 넣어주는 책의 무게가 점점 늘어만 가고, 해야하는 공부의 시간이 더해져만 갈 때 잠시 멈추고 AND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OR이라는 옵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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