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한 지나가리라
엑셀인간으로 살다보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 요일감각이 무디어지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깜빡깜빡한다. 지금 채우고 있는 무수한 네모칸들이, 몇 시간째 돌리고 있는 피벗 테이블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수 많은 숫자 속에 과연 인사이트가 있기는 할까.
모든 반복작업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느다. 철저히 분업화된 컨베이어 벨트에서 누군가의 반복작업 속도가 빨라지면 전체의 시간효율이 올라가고 시간이 곧 돈인 사업에서는 매출의 확대 혹은 이익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엑셀작업은 조금 다르다. 사용하는 툴만 동일할 뿐 작업하는 내용은 매일 달라진다. 똑같은 숫자를 매번 분석하지 않는다. 어제 봤던 숫자와 오늘 작업하는 숫자가 다르다. 어제가 오늘과 연결되지 않으므로 과거의 생산성이 미래의 효율을 보장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엑셀 워리어일 뿐이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괴롭힌다. 지긋지긋한 엑셀 무간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여기서 허우적대고 있는걸까. 20년 넘게 직장인으로서 고민해봤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반대로 말하면 답을 얻지 못한 상태로 20년이 지났다. 그 동안 무수한 그 날들을 어떻게 버텨온 걸까. 아마 오늘 하루만 버티자 라는 심정으로 지나왔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존버. 그렇게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보면 언젠가 터널의 끝을 보고 영광의 시대를 볼 수 있겠지. 존버의 끝은 언제나 승리한다 라고 누군가 그랬으니까.(증명된 적은 없지만) 하지만 주식해 본 이라면 모두들 알겠지만 존버의 끝은 손절일 확률이 대부분 높고 내 살아생전 존버의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존버도 답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 본 답은 어제와 오늘이 같을지라도 오늘과 내일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지금까지 내 삶의 모든 매일이 반복이었다고 하더라도 내일은 다를거다. 상식적으로 오늘과 내일은 같을 수 없지만 심리적으로 어제와 오늘이 같다고 느끼고 있기때문에 오늘과 내일도 같을거라고 믿어버린다. 이 잘못된 믿음을 깨야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듯이, 그 해는 어제의 해와 다르듯이, 나에게도 '새로운' 내일이 온다. Boys be ambitious. 서울의 달에서 한석규 아저씨가 말해서 알게된 명문장.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야망 혹은 꿈을 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오늘과 다른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다름과 차이를 매일 느낄 수 있다면 오늘 또한 매일이 새로워질 수 있다. 지나고보면 다 엇비슷한 과거일지라도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르게 살아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