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엑셀 인간 08화

COUNTIF

인생에 도움 되는 것들만 모아 모아 모아서~

by 현진형

COUNTIF = 통계함수 중 하나로 기준을 충족하는 셀의 개수를 계산


나는 이기적이다. 그런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폭넓게 관계맺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히 사람 많은 곳에만 가도 기가 빨리긴 하지만 그걸 넘어서 주변에 친구가 많지 않다. 회사 사람을 제외하고 10년 이상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들은 이제 한 손에 꼽을만 하다. 애초에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교에 약한 것도 있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 유독 약하다. 차라리 혼자 있을 때가 편한다. 그러다보니 '자기에게 도움 되는 사람들만 만나고 다니는 이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엑셀 함수 중에서 고른다면 COUNTIF같은 놈이다. 조건에 맞는 것들만 골라서 쏙쏙 가져간다. 차라리 그런 놈이었으면 좋겠는데 인간이 모질지 못하고 노예근성까지 있다. 고과 평타치면서 일은 일대로 하는 노예의 삶이 현실이다. 나도 이제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깔고 이기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COUNT 함수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이기주의자는 COUNTIF이고 이타주의자(=회사용어로 노예)는 COUNTA다. 자기가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만 발 담그고 회식 갈 때도 사람 가려서 가는 사람들. 반면에 비어있지 않은 셀은 모두 가져가는 COUNTA처럼 시키면 군말없이 결과물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인을 COUNTIF와 COUNTA의 딱 2부류로 나눈다면 아마 당신도 그 중간 어디쯤, 혹은 제일 끝에 위치해 있을거다. 난 밖에서 평가받는 것과 다르게 COUNTA에 가깝다. 이기적으로 살고 싶지만 이기적이지 못해서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거꾸로 처먹는 한심한 인간이다. 나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들만 골라내고 싶다. 맞벌이라 오전에 아이를 챙겨줘야 할 때는 늦게 출근도 하고 싶고, 와이프가 늦게 들어올 때는 6시보다 일찍 들어오고 싶다. 그럴려면 평소에 일을 적당히 받아야 한다. 내가 손 대고 있는 일이 많으면 내가 빠져야 할 때 그만큼 눈치가 많이 보이니까. 그래서 회사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말이지만, 일이 없는 사람(=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눈치보지 않고 회사를 자유롭게 다닌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멘탈이 버텨줄만한데 현타가 오는 건 이거다. 저 사람 월급이 나와 같거나 혹은 나보다 많다. 요즘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밸런스 붕괴가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COUNTIF는 점점 많아지고 COUNTA는 점점 사라지니 업무의 밸런스가 붕괴되고 인적자원의 이탈이 생기면서 사업에 구멍이 숭숭 생기는거다. 하지만 아무도 이걸 막거나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무진들은 COUNTA처럼 살아봐야 손해라는 걸 이미 알게 됐고, 임원진들은 이미 COUNTIF가 독식하고 있기 때문에.


해법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사회나 조직이 정상일리는 없다. 극단으로 치우친 곳에서는 반발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곧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 방향이 긍정적일지는 모르지만 변화가 있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변화라도 지금보다 서로가 서로를 더 배려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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