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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표 회의를 끝내는 방법 아세요?

누가 좀 알려줘요!

by 현진형

지겹다. 어느덧 10시 반. 9시에 시작한 회의는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맞고 너는 아니다 식의 막무가내 토론이 계속된다. 말을 하는 사람은 목청껏 외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딴생각을 한다. 아, 언제 끝낼 수 있을까. 이 지겨운 도돌이표 회의.


직장생활이 어느덧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모든 회의는 지겨운가? 왜 생산적인 회의는 없는가? 아침 7시에 하는 회의도, 밤 9시에 하는 회의도 모두 지겹다. 서점과 블로그에는 효율적인 회의에 대한 책과 글이 넘쳐나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생산적인 회의를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 시도 자체에는 감사하지만 제도만 만들고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검증하지 않는다. 결국 끝없는 시도만 반복된다. 실패의 원인을 찾기보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더 많고(많다기보다는 매 번 교체되는 임원인사로 인해 새로운 인사팀장은 이전 제도를 부정하고 새로운 제도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이러한 제도들도 새로운 회의를 통해서 태어난다. 회의를 위한 회의. 농담처럼 들리지만 진담이다. 대한민국 직장인 국룰. 회의는 지겹다. 어쩌면 글로벌 직장인도.


물론 100% 모든 회의가 쓸모없다는 건 아니다. 실무진의 참여 비율이 높을수록 생산적일 확률은 높다. 누군가에게 보고할 거리를 가지고 가야 하는 그들로서는 결론 없이 회의를 끝내기가 어렵다. ‘그동안 뭐 했어!’라는 따가운 눈총을 피하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퀄리티와 상관없이 일단 결론은 무어라도 있어야 한다. 다만 대부분의 실무진들은 쓸데없는 일의 반복을 싫어하기 때문에 결론까지 쓸데없을 일은 별로 없다. 문제는 큰 형님, 작은 형님들이 참석하는 회의다. 실무진들에게는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라고 수도 없이 묻는 그분들은 정작 결론을 내지 않는다. 자신과 상대방의 정치적 위치를 고려하여 적정선에서 타협을 하고 자극적인 발언은 피한다. 임원들이 다수 참석한 회의에서는 애매모호한 말들만 오간다. 역시 그들이 가장 자주 하는 새 날아가는 소리들이다. 상대방에게 내 기분을 어느 정도 표현하면서도 나에게 스크래치가 나지 않을 정도의 말들.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매출은 최대화하라는 이야기. 앉으면서 일어나라는 이야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라고 하면서 결국 한 마리도 못 잡는 이야기. 그래서 결론이 없다. 새처럼 날아다니는 말들만 있다. (갑자기 클레이 사격이 생각난다.)


도돌이표 이야기는 이렇게 생겨난다. 의사결정자가 의사결정을 해주지 못할 때. 혹은 의사결정자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려고 하는데 다른 참여자들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할 때 회의는 빙빙 돌다가 끝난다. 저 사람이 던진 뻐꾸기가 내가 던져 올린 새의 꽁무니를 물고 늘어진다. 그렇게 강강술래처럼 돌고 도는 물레방아…가 아니고 도돌이표 회의. 결국엔 해결해야 하는 안건들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새로운 숙제만 가득 안은채 다음 회의를 준비해야 한다. A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는데 내가 얻은 건 해결책 A’가 아니라 새로운 문제 B다. 그렇게 돌고 돌아 우리는 언젠가 또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런데 A는 어떻게 돼 가고 있어?’


이런 잘못된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는 언제나 환영이다. 하지만 회의도 하나의 문화인만큼 회사의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시간을 정해두고 회의를 하자는 취지로 30분/1시간 타이머를 모든 회의실에 설치했다. 하지만 사용 빈도가 떨어지자 인사팀에서는 1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를 끝내려면 회의 참석자를 불편하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회의실의 의자가 모두 사라졌다. 스탠딩 회의를 하게 되면 서서 해야 하니 오래 할 수가 없고 남들이 보기엔 벤처기업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1석2조라고 생각했던 걸까. 대대적인 캠페인과 함께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스탠딩 회의는 결국 의자를 다시 원복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30분 남짓한 회의라도 서서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했다. 오퍼레이션이 필요 없는 간단한 공지라면 모르겠지만 자료를 공유하면서 토론이 필요한 회의를 모두가 서서 진행하는 것은 힘들었다. 특히나 이미 역피라미드 구조가 된 회사에서 차, 부장급 이상의 사람들은 다리가 아프다며 불평을 했고, 실무진 회의에서 회의 주관자의 역할을 하는 그들은 한 두 개씩 회의실에 의자를 끌고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사팀에서 의자가 설치된 회의실을 몇 개 만들었고 그 회의실은 그야말로 인기폭발, 예약불가. 마지막 즈음엔 회의 때마다 모두가 의자를 질질 끌고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문제의 원인을 잘못짚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가장 역설적이었던 부분은 임원회의실을 포함한 소위 어르신들이 자주 사용하는 회의실은 편안한 가죽의자가 그대로 있었다는 점. 단 한 사람만 이야기하고 나머지 모두가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그런 회의실이야말로 스탠딩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앞뒤가 맞지 않았던 캠페인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도 대부분의 회의가 예전과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나부터 바꿔야 한다는 좋은 말도 있지만 새삼 입에 꺼내기가 무섭다. 솔직히 나부터 바꾸면 결국 나만 바뀌는 꼴이 될까 봐 걱정된다. 그래도 조금은 바꿔보고 싶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본다. 과연 노하우가 있을까? 특정한 한 사람의 리더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회사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 결국 CEO에 달려있는 거라면 똑같이 사람 문제인 것이고) 20년 동안 많은 문제가 있었고 많이 해결도 해 봤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해결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회의 문화다. 더 이상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피하지 않는 회의를 원한다. 해답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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