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그대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 준 부모라면 모를 수 없는 어플. 패밀리링크. 아직 시간관리 개념이 있고 콘텐츠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대신하여 부모가 어플로 아이 핸드폰을 관리하는 어플. 인터넷에 이 어플을 검색해서 나오는 결과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패밀리링크 조작하는 법 vs. 패밀리링크 뚫는 법. 다시 말하면 부모 vs. 아이. 어플의 이름은 패밀리링크인데 상황만 놓고 보자면 패밀리 디스커넥트로 보인다.
인간은 원래 가두려고 하면 할수록 벗어나고 싶어 한다. 오히려 나가든지 말든지 자세로 신경 쓰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다. 다만, 여기서 고려해야 할 부분은 그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갖춘 성인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성인도 합리적이진 않다.) 부모의 눈에 아이가 나가야 할 바깥세상은 온통 지뢰밭으로 보인다. 내가 손 잡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지뢰가 터질지 모른다. 난 우리 아이를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게 가장 쉽게 도달하는 부모의 논리다. 반면 아이들은 본인을 이미 합리적으로 판단 가능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간이란 존재는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무대뽀로 나가지 않는다. 적절한 가이드만 있다면 위험한 것을 피해서 우리도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저 밖에 커다란 운동장이 보이는데 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느냐. 이것이 아이들의 시각. 가두려는 자와 벗어나려는 자. 종족번식이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면 이 세상에 인간이라는 종이 존재하는 한 이 싸움은 계속되리라.
그 과정에서 패밀리링크는 위에 말한 적절한 가이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학교가 적절한 가이드라고 본다면, 감옥은 완전한 감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은어로 감옥을 학교라고 부르는 걸 보면 본능적으로 유사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학교처럼 다스리면 학생처럼 느끼겠지만, 감옥처럼 다스리면 죄인처럼 느껴질 것이다. 패밀리링크는 감옥처럼 활용하기에는 기능이 살짝 부족하다. 그래서 패밀리링크에 대한 불만글의 댓글을 보면 다른 어플을 홍보하는 문구도 쉽게 볼 수 있다. (어쩌면 원글 자체도 홍보글일지도) 어찌 보면 패밀리링크는 최소한의 기능만 구현했다고 보면 된다. 시간제한, 어플제한, 위치확인. 사실 항목만 놓고 보면 이 3가지면 충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걸 빠져나가는 방법을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공유하고 스스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 (마치 오픈소스나 나무위키처럼 정보를 공개하고 수정해 나가면서 발전시켜 나간다. 나름의 긍정적인 작용이랄까.) 그래서 싸움은 늘 원점으로 돌아온다.
나도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마찬가지다.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서 막았더니 다른 어플을 통해서 보고 있고, 시간제한도 방법은 알 수 없지만 요리조리 피해나가고 있다. 아이가 당장 눈앞에 있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지면 화가 끓어오르지만, 지금처럼 차분한 상태에서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아이는 늘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면서도 부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가이드가 없으면 심히 불편해하지만 자유를 향한 큰 열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도 늘 부모님 몰래 무언가를 했던 거 같다. 그런 면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지금의 부모들이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닐 거다. 우리가 자랄 때와는 다르게 아이가 중독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거리들이 너무나 많다. 인터넷, 핸드폰. 24시간 접속할 수 있는 세상. 부모가 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세상. 유튜브뿐만 아니라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어플들의 알고리즘이란 인간의 합리성 정도는 간단히 깨부순다. 가치 판단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은 아이들이라면 중독인지 알기도 전에 이미 빠져들 수 있다. 이런 부분이 부모의 걱정거리다.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를 보면 이런 고민에 대한 의견이 나온다. 행동경제학자가 제시하는 답은 지금의 모바일, 인터넷 환경은 아이들에게 위험하니 제어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래 동의한다. 예전에는 애가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하면 코드를 빼버리거나, 그것도 안 되면 본체를 던져서 부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피시방이 생기면서 더 이상 집에서 컨트롤할 수가 없게 되었고, 핸드폰이 생기면서 집에서도 밖에서도 부모의 통제권을 벗어나게 되었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통제하기엔 지금은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지금 어린 세대들은 당연히 부모보다 모바일에 익숙하고 기기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 막는 속도보다 빠져나가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이 전쟁에서 아이들이 결국엔 승리하는 이유다.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잘 생각해 보라. 자신이 감옥이라고 지어놓은 곳에 얼마나 많은 백도어들이 열려있을지.)
그래서 난 애초에 완벽한 통제를 포기했다. 아이의 욕망도 막을 수 없고, 어플이 모든 것을 막아줄 수도 없다. 그리고 막으면 막을수록 반발심에 더 하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종특이다. 안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어도 열어보지 말라고 하면 기어코 열어보는 판도라의 후예들 아닌가. 하지만 망아지가 들판에 뛰어놀듯이 방목할 수는 없다. 그러기엔 자극적인 콘텐츠가 너무 많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한다. 그 도구가 바로 패밀리링크다. 내가 어떤 앱을 왜 막았는지 알려준다. 카톡은 안 쓸 수는 없으니 시간제한만 건다. 하루 사용시간은 30분으로 걸었다. 굉장히 타이트해 보이지만 아이가 원하면 그냥 풀어주거나 시간을 더 넣어준다. 일종의 방지턱을 하나 만들어준 셈이다. 더 쓸 수는 있지만 일단 속도를 줄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장치. 유튜브도 보게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만 볼 시간을 정하라고 한 뒤 타협한다. 가끔씩은 어디 볼만큼 보라고 한 번 풀어주기도 한다. (이 방법이 생각보다 먹힌다. 어느 날 와이프와 내가 모두 피곤해서 주말 내내 잠만 잤다. 아이는 신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유튜브를 틀었다. 3시간 정도가 맥스였던 거 같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지겹게 된다.)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는 셈이다. 밸런스 조절을 잘해야겠지만 아이를 완전히 감옥에 가두겠다는 생각보다는 잘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도 유튜브 보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가끔 숨긴 게 걸린다고 해도 그냥 눈감고 넘어간다. 그렇게 넘어가주는 것도 어른으로서 재미 아닌가.) 아이가 하는 게임은 되도록 같이한다. 친해지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 게임의 자극성이나 중독성 등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간수와 죄수 사이에서 허물없는 선생과 학생 사이정도다.
이렇게만 보면 굉장히 성공한 육아러같아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나도 아이에게 화내고 소리 지르고, 하지 마, 안 돼를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가두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지만 적정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한다. 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는 부모가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통제보다는 견제가 더 적절할 것 같다. 견제를 위해서 던지는 공은 패밀리링크 정도면 적절할 것 같다. 사직구장에서 견제구를 던지면 야유를 듣는 것처럼 아이들이 싫어하겠지만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이 조차 던지지 않으면 아이들은 도루하듯이 금세 멀찍이 도망가버릴 테니까. 다만 조심하자. 견제구를 던져야 하는데 폭투를 던지게 되면 대량실점으로 이어진다. (프로야구 개막시즌을 맞아) 감독의 심정으로 아이들을 대하자. 공을 못 던진다고 방에 가둬놓고 공만 던지게 하면 팔이 망가진다. 조금 더 계획적으로 대화도 해 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자. 그게 우승의 비결이다. (올해 롯데는 우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적은 이 모든 글들은 누군가에게 하는 충고가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던진 말이다. 이제 마운드에 고독하게 올라선 투수의 심정으로 견제구를 던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