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게임일 뿐 흥분하지 말자
승부에서 지면 화가 난다. 이거 당연한 거 아닌가? 승부는 승부고 졌을 땐 깨끗이 인정하고 물러나야 한다라는 말. 그래 승패를 인정하는 것까지는 오케이. 하지만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은 힘들다. 승부에서 누군가에게 진다는 건 늘 빡치는 일이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 아이에게도.
아이와 종종 게임을 함께 한다. 헤비유저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게임을 좋아하는터라 게임하는 아이에 대한 반감은 없다. 고등학교시절 컴퓨터와 함께 이불 뒤집어쓰고 밤새 삼국지 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대학교 들어와서는 카트라*더 무지개 장갑으로 나름 주위의 존경을 받았고 지금의 와이프와도 PC방에 즐겜하며 데이트했었다. 그런 만큼 아이가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한 거겠지만 게임은 혼자 할 때보다 같이 할 때가 훨씬 더 재밌다. 나의 욕구도 어느 정도 채우면서 아이의 게임 파트너가 되어주는 건 서로에게 윈윈이다. (적어도 우리 가족은)
포켓*고를 시작으로 닌텐도 스위치를 거쳐 지금은 브롤스*즈를 한다. (아이는 원피*, 귀*의 칼날 모두 닌텐도에서 내가 하는 게임을 보고 입문했다.) 브롤의 특징은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승부가 결정 난다는 거다. 플레이 시간만 따지면 캐주얼 게임 정도인데 플레이 난이도는 상급으로 갈수록 꽤나 어려운 편에 속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에게는 레벨 올리기가 어려워진다. 즉 상대방에게 지는 횟수가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 앞서 말한 우리 가족의 특성상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와이프도 유사한 성격이다.) 승부에 지면 질수록 화가 나게 된다. 그렇게 화를 내는 아이를 보면서 '게임은 원래 그런 거야.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어'라며 군자 행세도 해 보고(내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짜증 낼 거면 게임하지 마!'라고 윽박지를 때도 있었다. (그런다고 그만두게 하지도 않을 거고, 그만두지도 않을 걸 알지만) 그러다 최근에는 동정의 마음으로 '아빠가 좀 올려줄까?'를 질렀다. 나도 아주 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이의 레벨 몇 개 정도는 올려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도전. 처음에는 한 등급만 올라가도 뛸 듯이 기뻐하더니 이제는 다음, 다음을 외친다. 하지만 나도 실력의 한계가 있으니 쉽게 올라가지 못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기면 100이 올라가고 지면 50이 내려가는 시스템. 1번 이겨도 2번 지면 도루묵. 근데 1번 이기고 3~4번 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서서히 찾아오는 분노. 예전의 나 같았으면 소리를 지르고도 남았다. 이렇게 화가 날 때 나와 아이의 차이점은, 나는 점점 더 그 게임에 집착하는 반면 아이는 게임을 꺼버리고 외면한다. 끝까지 하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 나는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차라리 끝까지 해'라고 하지만 성격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화가 나는 건 그저 화가 나는 것일 뿐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승부욕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으로 뒤덮인 한국 사회에서 승부욕이 없다면 차라리 부처님처럼 살아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 my way 성격이 있다면 오히려 축복이 아닐까.) 그렇다면 승부욕을 원초적인 분노에서 스스로 조절 가능한 감정으로 조금이라도 바꿔주려고 하는 게 좋다. 처음엔 말만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경험이 없는 아이는 말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 옆에서 같이 겪어주고 보여주고, 스스로 경험해 봐야 이해한다. 그래서 같이 게임하고 같이 지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화를 내며 같이 참아내고 다시 웃으며 게임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1번 이기고 3번 지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분노를 자제했다. 그저 아빠가 집중할 수 있게 조금만 내버려 둬 달라고 부탁했다. 심호흡을 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숙제하는 아이 맞은편에서 나 또한 초집중 상태로 게임을 했다. 이틀 동안 저녁마다 1시간씩, 결국 레벨을 올렸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게임을 하면서 아이가 게임하면서 느꼈을 감정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화가 났을 때 주위에선 어떻게 해줘야 안정적으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지도. 역지사지는 그런 말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 대화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게임을 같이 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놈은 흑염*에도 나오지 않는가.)
게임에 지면 화가 난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다. 밥을 너무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처럼. 소화가 안 된다고 앞으로 평생 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없다. 조절할 수 있으면 된다. 우리는 조절하는 법을 같이 배운다. 그렇게 같이 게임하고, 같이 화내고, 같이 피식거리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같이 승부한다.